시아버님 묘소에 가족 봉안당을 마련하기로 한 날, 남편은 유난히 흡족해했다. 나중에 아들딸이 우리를 찾으면 저절로 할아버지 할머니도 뵐 것이 더 좋다고 했다. 나도 내 부모 옆에 다시 눕고 싶단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어디에 있든 마음으로 종종 내 엄마 아버지를 찾아갈 테니, 거의 평생을 홀어머니와 살아온 남편이 늦게라도 아버지 옆에 누워보는 게 맞았다.
살면서 때론 글로벌하게 때론 전국구로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단 한 번도 다음을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마지막 거처를 일찍이 알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의 마지막 집은 햇살이 잘 들고 눈앞이 시원한 언덕에 있다. 성묘를 하며 평생 드나들었지만 새삼스레 들풀 하나도 더욱 정답다.
어찌 생각하면, 내일 일도 모르고 살아가면서 죽은 뒤를 준비한다는 것이 우습다. 한편으론 우리에게 죽는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 예측 못할 내일은 준비 못해도 죽은 뒤의 일은 그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난 그 자리를 바라보며 제법 진지하게 훗날 나의 장례식도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그날이 되면 나는 수의 대신, 딸이 만들어 평소에 내가 가장 자주 입던 옷을 입고 싶다. 행복했던 기억이 잔뜩 묻은 옷일 테니, 떠나는 나도 보내는 사람도 이별하는 길이 든든할 것 같다. 장례는 하루로 족하고 탁자엔 영정 대신 스냅사진 몇 장과 작은 들꽃을 두었으면 좋겠다. 외국 영화 속의 추도식처럼 가족과 형제와 정말 가까운 지인만 모여 우리가 함께 즐겼던 커피와 차와 한 잔의 와인들을 자유롭게 마시다가, 누군가가 조사 하나를 읽어주면 좋겠다. ‘그는 나의 북쪽이었고 나의 남쪽이었으며 나의 동쪽과 서쪽이었다.’ (W.H.Auden의 Funeral blues) 처럼 누군가에겐 고인이 세상 전부였다는 멋진 글이 아니어도, 그냥 내 생전의 엉뚱함을 담은 재미있는 조사를 들으며 모두 한 번쯤 웃으면 나도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조금은 작은 것에도 다정하고 따뜻했다고 잠시 떠올려주면 좋겠다. 소박한 티타임 뒤엔 짧고 간단한 작별인사로 떠나고 싶은데 이때 모두 함께 기도를 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때의 기도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족들을 위한 기도이길 소망한다.
이 아름다운 봄날, 나는 화창한 햇빛 아래 내 장례식을 상상했다. 만개했던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하나 둘 지고 있는 날이었다. 영원히 낙화하지 않는 꽃이 있다면 말라있던 가지에서 새 꽃이 피어나는 기쁨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 떨어지는 꽃잎마저 지극히 아름다운 날이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것이 행복했다. 더없이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났지만 어리석고 게을러 사는 내내 변변치 않았던 내가 끝이라도 이토록 멋진 마무리라니, 그야말로 벚꽃엔딩같이 아름다운 해피엔딩, 근사한 상상이었다.
세상 바뀌는 속도를 보면 미래의 장례문화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의 마지막은 상상일 뿐이고, 그때 이미 나는 그걸 모를 테니 중요하지도 않다. 훗날 내가 진짜 바라는 마무리는 나와 내 가족들의 마음속에 ‘내가 많이 사랑했고 많이 행복했다’ 라고 남는 것이다. 그날이 되면 나는 분명히 ‘일생이 사랑만 해도 됐었다’고, ‘그러기에도 짧았다’고 생각할 테니...
해피엔딩을 위해 난 앞으로 열심히 사랑하고 행복할 작정이다. 매일 유능한 사람은 못되어도 매일 사랑은 할 수 있으니까. 매일 좋은 일이 생기진 않아도 매일 감사할 거리를 찾으며 행복해할 순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