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5876명. 2018년 7월 개봉한 영화 ‘박화영’(감독 이환)의 총 관객수다. 한 리뷰 유튜버가 소개한 ‘박화영’의 조회수는 1189만(2021년 4월15일 기준)이다. 가출청소년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는 관객을 모으지 못했지만,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였다.
이환 감독은 ‘박화영’의 후속편 격인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로 돌아왔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환 감독은 ‘박화영’이 유독 “너무 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박화영’ 제작 전부터 영화가 세다고 말하는 제작사 대표에게 “이게 현실”이라고 받아쳤고, “그럼 관객 다 내 쫓겠다”고 말했다. 영화제에서 ‘박화영’을 보던 관객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환 감독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 아쉬움을 이번엔 조금 더 보편적인 영화로 풀어내려 했다.
“2년 전쯤 우리나라가 낙태로 찬반이 뜨거웠을 때 토론 방송을 많이 봤어요. 여러 생각을 했는데 그때 ‘임신을 한 10대 주인공이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사기를 당한다’는 한 문장이 생각난 거예요. 영화를 만들어볼까 싶었죠. ‘박화영’에서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세진 캐릭터를 불러서 이 한 줄과 합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시작된 프로그램이었어요. 맨 처음 ‘어른들은 몰라요’를 만드는 제 마음가짐은 전 세대가 볼 수 있는 재밌는 영화를 만들자는 거였어요. 막상 영화를 만들다보니까 ‘박화영’보다 보편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수정하게 되더라고요. ‘박화영’을 불편하게 여겼던 분들이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하려는 마음이었어요. 롱 보드를 타는 장면을 넣고 힙합 음악을 쓰면서 희석시키려고 했죠.”
이환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을 가장 중시한다. 인물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서사를 덧붙이는 식이다. 그의 영화들에 인물들의 위태로운 감정과 연기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다. ‘박화영’을 찍기 전 카페에서 10대들과 만나 인터뷰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제가 만든 말인데 ‘시대는 변해도 세대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제가 보낸 10대와 저희 아버지가 보낸 10대, 앞으로 보낼 10대들이 모양이 좀 달라졌을 뿐 어느 시대나 폭력과 왕따 같은 것들이 다 존재했던 것 같거든요. 지금 매체도 많고 지칭하는 은어도 많다보니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거지 언제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박화영’ 시나리오를 카페에서 쓰고 있을 때 같은 시간에 오는 고등학생들이 있었어요. 교복을 입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가서 제 명함을 주고 맛있는 걸 사줄 테니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냐고 말했어요.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많이 했어요. ‘우리 얘기가 영화가 된다고?’하며 신기해하더라고요.”
신인 배우로 가득했던 ‘박화영’과 달리, ‘어른들은 몰라요’는 그룹 EXID 출신 안희연의 합류로 화제를 모았다. 첫 연기임에도 안희연의 연기는 부족함이 없었다. 배우 이유미가 전작에 이어 다시 세진 역으로 열연했고 배우 출신인 이환 감독도 출연해 연기를 펼쳤다. 이 감독은 촬영 전 배우들과 함께 진행하는 워크샵의 존재를 설명했다. ‘박화영’ 때는 4개월, ‘어른들은 몰라요’는 2개월 동안 서울 장안동에 위치한 영화사 사무실에서 워크샵을 진행했다.
“리허설과는 개념이 달라요. 리허설이 동선과 카메라 테스트라면, 이건 자율적이죠. 쉽게 생각하면 활자가 씌어있는 감정을 제일 크게 얻는 거예요. 정서나 감정을 폭발시켜서 크게 만들어놓는 거죠. 현장에서 필요하면 감정을 줄일 수 있지만, 끄집어 올리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감정을 크게 만들면 배우가 쓸 수 있는 무기가 많아지고, 자신감이 생겨요. 배우들은 모두 어느 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온 환경에서 정서를 받으면서 그 사람만의 말투와 자아, 감정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배우 고유의 버릇을 더 극대화시켜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집중해서 솔직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배우가 감정을 쓰는 걸 방해하지 않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환 감독은 2011년 단편 영화 연출을 시작으로 10년간 감독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찍어왔다면, 앞으로는 다 같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이 감독이 걸어갈 방향을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박화영’보다 보편적인 영화로 시작했잖아요. 다음 영화를 찍으면 이 영화가 중간 지점이 될 것 같아요. 어쩌면 ‘박화영’과 ‘어른들은 몰라요’가 제가 할 수 있는 보편적이지 않은 영화 최전방에 선 마지막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 쓰고 있는 건 범죄 드라마 장르예요. 완전히 재밌을 것 같아요. 제가 쓴 영화들엔 관계가 결여된 친구나 가족들의 얘기가 나오잖아요. 다음에도 관계와 가족에 대한 것들이 내포된 범죄 드라마를 하게 될 것 같아요.”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