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목표는 광주의 시민들을 무장하게 만들어 폭도로 만드는 것. 1980년 5월 광주 출신 박한수(민우혁)는 특수 군인인 편의대의 일원으로 10년 만에 고향땅을 밟는다. 민주의 봄이 올 거라 믿던 5월의 광주는 계엄령이 확대되며 점점 어두워진다. 그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광주 시민을 보며 박한수는 군에서 받은 지시와 다른 생각을 품는다.
뮤지컬 ‘광주’는 시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투입된 군인의 시선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광주 시민들을 만나고 군인 진압의 정도가 심해지는 과정에서 박한수의 심리가 조금씩 변해간다. 결국 군의 집단 발포로 시민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박한수는 결단을 내린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상상 속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려 입체감을 더했다. 이미 알던 이야기가 무대에서 재연돼도 지루하지 않다. 광주 시민들과 함께하며 박한수의 시선이 변해가는 과정은 관객들이 41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도 길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함께 분노하며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설득력이 더해지고 더 몰입하게 한다.
‘광주’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광주 시민들이다. 함께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시민들은 처음부터 떼로 등장해 단숨에 무대를 장악한다. 주인공인 박한수의 서사는 초반에만 주목받을 뿐,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초점에서 벗어난다. 무대 구석에서 고뇌하는 박한수보다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사랑하고 다투는 시민들의 모습이 빛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서 외부인인 주인공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의문이 드는 점은 아쉽다.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인 만큼 이야기의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무대를 지켜보게 하는 힘은 같은 눈높이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시민들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한두 명의 주인공이나 영웅을 조명한 뮤지컬과 달리, 광주 시민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나 바랄 수 있는 걸 기대하고, 당연하고 옳은 결과를 요구한다. 작품엔 군인들만 존재할 뿐, 이면의 권력자를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민들이 밝고 활기차게 무대를 뛰어다닐수록 더 슬프고 안타까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번에 공연하는 ‘광주’는 지난해 10월 초연 이후 논란이 된 부분을 제작진이 수정한 결과다. 광주와 연관이 없었던 박한수를 광주 출신으로 설정했고, 40년 후의 마지막 장면도 추가됐다. 트로트 풍 노래는 빠졌고 신곡이 두 곡 추가됐다. '광주'는 오는 25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다음달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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