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래서 쿠팡 따라잡겠나

[기자수첩] 이래서 쿠팡 따라잡겠나

기사승인 2021-05-13 07:00:11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십원, 백원 싸다고 거기로 장을 보러가진 않죠. 가다가 차 기름 값이 더 나오지 않겠어요? 최근 식료품‧식재료 가격 오른 것을 보면, 이 가격이 ‘최저가’인 줄도 잘 모르겠고요.”

대형마트 업계가 ‘최저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에 한 중년 주부가 보인 반응이다. 업계가 경쟁사보다 ‘1원’이라도 싸게 팔겠다며 요란법석을 떨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자동차 기름 값도 못 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웃픈’ 평가다.

실제로 기자가 대형마트 취재 중 만난 다수의 소비자들은 가격 경쟁이 진행 중인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지난달 8일부터 이마트는 경쟁사(쿠팡, 롯데마트, 홈플러스)보다 가격이 높으면 차액을 돌려주는 ‘최저가격 보상 적립제’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롯데마트 등 경쟁업체가 반격에 나서면서 업계에선 10여년 전 사라졌던 ‘최저가 경쟁’이 다시 불붙는 중이다. 최근에는 마켓컬리와 편의점 업계까지 뛰어들며 유통업계 전반이 휘말려 드는 모양새다. 

최저가 경쟁은 대표적인 ‘과거의 유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초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절정을 찍고, 2015년 이후부터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업체별 가격차이가 줄고 ‘출혈 경쟁’의 원인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납품업체 갑질, 품질 저하 등의 부작용도 잇따랐다. 업계 베테랑들은 당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3사가 벌인 최저가 전쟁을 ‘무모했다’라고 회상하기도 한다.

반면 이들이 가격 경쟁으로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사이, 쿠팡 등 이커머스는 배송력을 키우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쿠팡은 2014년 익일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첫 개시했고, 향후 업계 판도를 쥐락펴락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유통업 전쟁의 양상을 ‘가격’에서 ‘배송’으로 바꾼 획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10년 후. 다시 등장한 최저가 경쟁의 배경에도 쿠팡이 있다.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한 쿠팡은 지난달부터 로켓배송이 가능한 제품 100%를 무료배송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며 기존 고객까지 쿠팡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최저가를 유지해 온라인으로의 이탈을 막겠다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온라인몰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진다는 소비자 인식 전환도 꾀할 수 있다. 다만, 시대가 변했다. 가격이 싸서 쿠팡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핵심은 로켓배송이라는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다. 마켓컬리의 성공비결 역시 가격이 아닌 새벽배송이었다. 

생활필수품 특성상 가격을 몇 백원 내려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혜택으로 느끼기 힘들다. 현대 소비자들은 3000원 돈을 더 주더라도 익일 집에서 편하게 배송 받는 온라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더 이상 1000원을 아끼기 위해 대형마트를 가지 않는다.

업계에서도 구시대적인 ‘10원 전쟁’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읽힌다. 홈플러스는 최근 유통가의 최저가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품질'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대형마트간의 가격이 내려갈 대로 내려간 상황에서 ‘가격’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긴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대신 친환경 등 ‘가치소비’와 배송 역량을 강화하는 ‘고객 서비스’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유통업의 목적이 장사라면 10원, 20원이 중요할 수 있지만, 고객이라면 품질과 서비스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다. 소비의 수단과 주체가 급변하고 있다. 로켓배송으로 승승장구하는 쿠팡을 고리타분한 가격 경쟁으로 떨어트릴 수 있을까. 유통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어선 안 되겠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만난 한 주부는 마트가 포인트를 5배로 주고 있지만, 장을 보는데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가격 차이는 거의 없었다. / 사진=쿠키뉴스DB
 
ist1076@kukinews.com
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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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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