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제가 영화 ‘랑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관람에 도전했습니다. 14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겁쟁이 상영회’에 다녀왔는데요. 겁쟁이 상영회에선 극장 내부 조명을 켠 채로 영화를 상영합니다. 일반 상영관 대비 10배 밝은 LED 스크린 덕분에 불이 켜진 상태에서도 영화를 선명하게 관람할 수 있다고 롯데시네마 측은 설명했습니다. 첫 겁쟁이 상영회에는 72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영화관에 입장하는데 직원이 귀마개를 건넵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귀를 틀어막고 싶을 때 쓰라더군요. 일단 소중히 챙겼습니다만, 사실 저는 귀마개보다 강력한 방어막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애착 인형입니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마다 애착 인형을 쓰다듬으면 조금이라도 스트레스가 낮아지지 않을까 하며 챙겨간 건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애착 인형, 네가 수고했어.

영화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극장 곳곳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잦아졌습니다. 오른편에 앉은 관객도 두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었고, 앞자리에 앉은 관객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더군요. 발을 동동 구르거나, ‘악’ 소리를 내는 관객, 심지어 중간에 퇴장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저도 비슷했는데요. 긴장이 풀릴 때마다, 영화에서 님이 기도를 올리듯 애착 인형을 하염없이 쓰다듬었습니다. 손에서 느껴지는 털의 감촉이 그나마 현실감각을 일깨워줬거든요. 이것은 영화다, 실제 이야기가 아니다, 저 사람은 배우다, 강아지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무사히 관람을 마친 관객에겐 무드등이 주어집니다. ‘집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당신이 힘들까봐 롯데시네마가 준비했다’고 하네요.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스누피 얼굴이 더욱 무서울 것 같긴 합니다만…부디 숙면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 참. 영화 시작 전에 상영관이 암시 암전되는데요. ‘뭐야. 내 조명 돌려줘요’라며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화사 로고가 지나가면 다시 불이 켜질 겁니다. 겁쟁이 상영회는 오는 17일과 18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건대입구, 센텀시티의 수퍼S 상영관, 롯데시네마 수원의 컬러리움 상영관에서 이어집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이은호 기자,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