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는 김 대리를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격지심도 있는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 뾰족해진 인물”로 봤다. 그는 먹고 살기가 버거운 20·30대 회사원들이 김 대리에게 공감하길 바란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날을 세우게 될 때가 있죠. 그게 강한 거라고 착각하면서요. 김 대리의 그런 면에 저도 공감했어요.”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광수가 들려준 얘기다.
‘싱크홀’에서 김 대리는 직장 상사 동원(김성균)의 집들이에 갔다가 갑작스런 땅 꺼짐 현상으로 지하 500m에 고립된다. 난데없는 불운에 동원을 원망하기도 잠시. 계속되는 낙하·붕괴 사고로 생사기로에 놓였던 그는 후배 은주(김혜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던 삶이, 실은 수많은 이들과의 연결로 지탱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걸까. 김 대리는 그때부터 함께 고립된 동원·은주·만수(차승원) 등과 도움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광수는 “김 대리가 싱크홀에 빠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광수는 김 대리를 이해했다. 그 또한 김 대리처럼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서다. “욕심에는 끝이 없나 봐요. 한 번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 다음에는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는데도 더욱 많이 인정받고 싶고. 그게 사람 마음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다만 김 대리와의 ‘성격 싱크로율’을 물었을 땐 대답을 망설였다. “김 대리를 이기적인 인물로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도 했는데…저는…예…배려를 하려는 성향…이라고 제 입으로 말하려니까 민망하네요.”
그는 얼굴을 붉혔지만, 함께 촬영한 배우와 감독 사이에선 ‘이광수는 인성 좋은 배우’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김혜준은 “이광수가 먼저 다가와 분위기를 풀어준 덕에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김성균은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이광수를 사랑했다”고 했다. 선배 차승원·김성균과 후배 김혜준을 잇는 ‘중간 다리’ 노릇을 하느라 고단했을 법도 한데, 이광수는 “주변 사람에게 많이 배웠다”고 거듭 말했다. 여러 즉흥 연기를 소화하며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흔들리는 세트 위에서 함께 구르고 버티며 동료애도 진해졌다.
영화 밖에서 이광수는 ‘아시아 프린스’ ‘기린’으로 불린다. SBS ‘런닝맨’에서 붙은 별명이다. 1회부터 11년간 이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던 그는 유재석 등 동료들을 뒤로하고 지난 달 하차했다. 지난해 2월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발목이 문제였다. 이광수는 “다음 달에 (발목에 넣은) 철심을 뺀다”며 “수술을 받고 나면 재활에 시간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예능인 이미지가 연기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하지만 이광수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미지를 고려해서 작품을 고르지는 않는다”며 “내가 예능인 이미지를 벗고 싶다고 해서 사람들 인식을 한꺼번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런닝맨’ 속 이광수도 저예요. 그 모습을 재밌게 봐주신다면 제겐 감사할 따름이죠. 제가 작품과 캐릭터를 잘 준비해서 표현하면 (예능 속 모습과) 별개 캐릭터로 여겨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지금처럼 저를 친근하게 받아들여주시면 좋겠어요. 친구처럼, 동생처럼요.”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