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국내 도입을 앞둔 자연유산 유도 약물의 조제권을 두고 의료계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약분업 예외 품목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약사들은 원칙대로 ‘약은 약사에게’ 맡겨야 한다며 맞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현재 경구투여 자연유산 유도제 ‘미프지미소’의 품목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미프지미소보다‘미프진’이라는 제품명으로 유명하다.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복합제로, 임신 초기에 투약해 임신 상태를 종결할 목적으로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이다. 국내 기업인 현대약품이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해 지난 7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국내 도입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미프지미소의 처방과 조제가 제도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형법상 낙태죄가 지난해 12월31일을 기해 효력을 잃은 이후,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미프지미소의 의약분업 예외 품목 지정 여부가 쟁점으로 불거졌다. 의약분업 예외 품목은 의사가 진료와 복약지도를 모두 담당하고, 병원에서 약을 직접 제공한다.
산부인과의사들은 자연유산 유도 약물을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오롯이 맡겨야만 여성의 건강과 권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장은 “해외에서 상용화한 약이라고 해서 안정성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약은 자궁외 임신, 불안정 임신으로 진단되는 임신부에게 투약할 시 나팔관 파열, 불완전 유산, 염증과 패혈증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어 “투약 후에도 임신이 완전히 종결되었는지 의사의 면밀한 예후 관찰이 필수적이며, 이 약을 처방받은 여성이 진료, 조제, 복약지도 등을 위해 여러 사람을 거쳐야 한다면 알리고 싶지 않은 병력이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약사들은 의약분업 원칙에 예외를 둘 근거가 없다고 봤다. 김예지 대한약사회 여약사이사는 “의약분업 원칙을 지키면 여성의 병력이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어려워진다는 주장은 모순”이라며 “향정신성 의약품도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오랫동안 국내에서 활용되고 있는 사후피임약도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인데, 의약분업에 따라 약사의 조제와 복약지도를 거쳐 환자에게 제공된다”며 “사후피임약과 차이점이 없는 미프지미소만 특별히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분류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프지미소, 미프진 등으로 불리는 경구투여 자연유산 유도 약은 프랑스의 제약사 루쎌위클라프가 1988년 처음으로 출시했다. 이후 현재까지 40여년 동안 미국,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을 비롯해 75개 국가에서 승인됐다. 앞서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됐으며, 2019년에는 필수의약품 핵심 목록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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