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남자. 외출하는 아내를 흘겨보는 남자. 매일 아침 식탁에 앉아 밥 달라고 보채는 남자.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보는 남자. 가수 김혜연의 ‘간 큰 남자’ 가사다. 남녀는 평등하다는 말을 누군가가 한다면 요즘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느냐는 눈초리다.
어느 가정에서 맞벌이 부부가 아이가 생겨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때 누가 아기를 돌보는 것이 더 좋을까 고민한다면 경제적인 면에서 월급이 적은 쪽이 그만두는 것이 지혜로운 결정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육아를 누가 책임지든 부부가 의논해서 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양육 역할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니 양육하랴, 직장에 나가랴,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안 됐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고로 자기 자신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다. 점점 바뀌어 가는 사회적 상황을 인지는 하면서도 가부장적인 우위에 있는 자기 존재를 놓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보다. 이럴 때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우스개 같은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있다. 이의 시대적 반영을 하듯 노래도 나와 불리고 있다. 언뜻 듣기에는 참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남녀가 평등한 관계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유행했던 간 큰 시리즈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20대에는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남자. 30대는 아침밥 달라는 남자. 40대는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묻는 남자. 50대는 아내가 야단칠 때 말대답 하는 남자. 60대는 벌어다 준 돈을 어디 썼는지 물어보는 남자. 70대는 외출할 때 같이 나가자고 하는 남자다.
나는 우선 20대는 간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 전이니 어머니 앞에서 반찬 투정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이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는 표현은 해 보았지만, 반찬 투정이라고 할 만한 말은 해 보지 않았으니 나는 간 큰 남자는 아니다. 30대는 직장생활을 할 때니 거의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출근할 때가 많았다. 직장인의 대부분이 아침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그래서 아침밥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간 큰 남자가 아니다.
40대는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묻는 남자가 간 큰 남자라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거의 아내의 외출을 보지 못했으니 간 큰 남자가 아니다. 아내는 전업주부로 내가 출근한 시간에 외출을 했을 테니 나는 아내에게 물어본 적도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간 큰 남자가 아니다. 50대는 지금으로 아내가 야단칠 때 말대답을 하는 경우인데, 내 아내는 소리는 조금 클지언정 말대답하는 아내는 아니니 나는 아직까진 간 큰 남자가 아니다.
60대도 퇴직금을 어디 썼는지 물어보는 남자가 간 큰 남자라는데 나는 퇴직금을 이미 딸을 출가시킬 때 다 썼으니 나는 간 큰 남자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70대 역시 나는 간 큰 남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외출할 때 거의 같이 외출하고 함께 교회를 다니니 간 큰 남자가 아닌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어디를 가든 거의 함께 다닌다. 누가 누구를 따라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가서 다닌다. 모양새는 간 큰 남자지만 따라 나가는 것이 아니기에 이 또한 나는 간 큰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소 나는 간 큰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이 아닌 아내는 완전 간 큰 사람이란다. 나의 구차한 변명은 차체하고 외아들로서 가부장 시대를 만끽하고 산 사람이란다. 같은 사실을 두고 이렇게도 의견이 다룰 수 있는가 생각해 보지만 아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니 할 말이 없다. 간이 크지 않더라도 오래만 같이 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거야말로 진짜 간 큰 남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