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근 스마트관광협회 회장은 2000년 이후 크게 변화한 우리 여행업계의 산증인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패키지여행이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여행사에 들어가 여행상품 기획을 익혔다. 기차여행을 중심으로 국내 패키지관광이 만들어질 때 최전선에서 이를 기획했다. 이후 온라인으로 여행시장이 옮겨갈 때 직접 창업을 해서 여행업을 온몸으로 겪었다.
고난도 많았다. 사스, 메르스 등의 전염병으로 여행업계가 힘들었던 시기도 버텨냈지만, 히말라야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시작한 후 네팔 대지진을 맞으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내 떨치고 일어나서 관광 컨설팅을 시작하고 여기서 맺은 네트워크로 스마트관광협회를 설립해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뒤에 국내여행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여행업계는 예측했다. 막상 국내여행 개발에 뛰어들어 애쓴 곳은 많지 않았다. 여행사들은 그저 멍하니 하늘길이 다시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이 회장은 스마트관광협회 회원사와 함께 지역을 누볐다. 그에게 우리 여행업의 변화와 지자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여행업계 경력을 좀 들려달라.
하나투어 자회사에서 국내여행을 담당했다. 인트라바운드 여행 상품을 두루 기획했다. 기차여행이 시작되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대략 2002년에서 2010년까지 그런 상품을 기획했다. 지역의 랜드사가 상품화 된 패키지를 진행하게 하는 패키지여행인데 곳곳에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강원도 해돋이열차, 겨울연가 가을동화 등 드라마시리즈 여행, 청산도에서 한려수도까지 다양한 패키지여행을 만들었다. 아웃바운드(내국인 국외 관광)와 인바운드(외국인 국내 관광)도 두루 경험했다. 국외여행을 직접 기획하고 상품화 하는 일도 했다. 인바운드는 미주 교포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패키지 여행을 기획했다.
-벤처업계에서도 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여행을 모바일로 예약하는 시대가 오리라고 예상했다. 오프라인 대리점 위주의 홀세일에서 모바일 벤처로 시장이 변화할 것 같아서 먼저 벤처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다녔다. 철가방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배달의민족과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대학생들이 만든 앱이었는데 여기에서 공동 대표로 일했다.
-관광벤처 창업도 했다는데.
1년 뒤에 관광벤처를 창업했다. 관광벤처 인증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받았던 업체다. 실시간 호텔 예약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모델이었는데 개발이 지체되었다. 결국 사업을 접게 되었다. 개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투자자금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을 중심으로 한 ‘히젝’도 창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SNS 마케팅만으로 모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수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여행을 가는 것으로 패키지 시장이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특수목적을 가진 상품을 만들어서 SNS로 모객하면 가능하다고 보았다. 파일럿 패키지를 만들어서 페이스북으로 예약을 받았더니 100명 이상 들어왔다. 네팔 쪽에 여행자를 송출했을 때 책임있게 진행할 수 있는 곳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항했다.
-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나?
상당히 잘 되었다. 트레킹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산악자전거나 서핑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네팔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현지 투자한 금액의 대부분이 날아갔다. 변제금액만 수억원을 물어줬다. 여행업은 항상 이런 재해에 노출되어 있다. ‘몰빵’하다가는 한방에 훅 가는데 내가 그랬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파산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전재산을 처분했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많이 상하게 되었다. 파산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회가 아니었다. 누굴 만나더라도 돈 빌리러 왔냐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창업에서 실패하면 나락으로 빠진다. 나락에 빠진 사람에게 관대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우연치 않게 관광 자문을 하게 되었다. 한국경영인증원에서 관광에 대한 자문을 하다가 관광문화연구소 소장으로 들어가서 컨설팅을 시작했다. 한국관광공사 용역을 하다가 초대 관광기업지원센터장이 되어 관광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사업을 했다. 한 해 동안 170건의 컨설팅을 했는데 그 때 관광기업을 많이 만났다. 그때 보니 관광기업들끼리 교류가 없고 기술 공유가 안 되고 있었다. 서로 만나면 시너지가 날텐데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걸 누군가 조율하고 조합하는 역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마트관광협회를 창립했나?
지자체는 솔루션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를 연결하는 민간 협의체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래서 2020년 6월에 사단법인 한국스마트관광협회를 설립했다. 기술을 나누고 투자자를 연결하는 일이 필요했다. 좀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자체와 과업을 연결하는 일이 절실했다. 협력의 필요성을 느낀 인트라바운드 업체와 변화된 시장에 적응하려는 전통 관광기업들이 여기 모이게 되었다.
-신생협회인데 한국스마트관광협회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
기존의 협회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데, 우리는 관광업이 발전하고 관광기업이 성장하는데 포커스를 두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필요로 하는 부분에 포커스를 둔다. 지자체에 관광객을 유입을 위해 어떤 양질의 관광 콘텐츠와 상품 서비스를 기획할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지자체와의 연결을 시도했나?
관광기업들을 데리고 지자체를 찾아 다녔다. 지자체가 필요한 영역이 유통 판매인지, 마케팅인지, 새로운 기술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해서 찾아갔다. 일종의 관광기업 로드쇼를 한 셈이다. 인천 전주 안동 강릉 울산 합천 부여... 전국을 돌며 변화된 관광 환경을 설명했는데 공무원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다. 지자체에 소문이 퍼지면서 지금 설명회가 10여 곳 잡혀있다.
-협회가 사업도 하는 것인가? 협회는 공동의 브랜드로 존재한다.
컨설팅은 회장의 개인회사 KOST(한국스마트관광)에서 하며 상근 직원은 10명 정도인데 데이터에 기반한 관광 컨설팅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수요에 못 따라가고 있다. 올해만 20개 정도의 용역을 했다. 지자체에서 가장 애를 먹는 것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업체를 찾는 일이다. 업체를 찾는데 유용한 구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박물관이 AR/VR 전시실로 바꿀 때 어떻게 적합한 곳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 어떻게 이 과제를 적절히 풀어갈 구조를 제안한다. 스마트도시에 필요한 플랫폼을 설계하고 운영할 사업체를 매칭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다. 설명회 이후 지자체와 기업은 각각 연결되는데 올해 매칭된 용역사업만 30건이 넘는다.
-지자체를 만날 때 회장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데이터를 지표 삼아서 관광개발을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여행자들은 이런 것을 원하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이렇다. 여행자들이 원하는 것을 구축하려면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하고 과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컨설팅한다. 그리고 관광기업들이 그 과제를 수행하면서 지역의 관광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기존의 관광개발 연구용역은 전략을 세워주는 것을 주로 하는데 이제는 실행계획이 중요해졌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곳이 없었다. 데이터와 관광기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잘 수행하는 곳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관광 컨설팅 사례를 소개해달라.
경상북도가 대표적이다. 관광 인프라는 잘되어있는데 콘텐츠가 없었다. 특히 체험이 부족해서 소속사 기업들이 들어가서 체험 관광 영역을 확장했다. 전주와 서울에서 한복 열풍을 일으킨 주역, 인트라바운드 여행사들이 경북의 관광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지역을 검색하면 나오는 인스타그램 사진들이 너무 뒤죽박죽인데, MZ 세대가 관심 있는 방향으로 지역의 색깔을 바꾸고 있다.
-지자체에 컨설팅을 해보니 어땠나?
지역에 내려가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팔 수 있는 상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상품을 만들어서 유통하고 판매할 구조도 없었다. 지자체는 매년 예산만 소진하고 있었다. 한국관광공사도 구조를 만들려는 고민은 적었다. 관광기업을 연결해서 콘텐츠를 발굴해서 유통 판매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의 업체들이 양질의 여행상품을 만들고, 이를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플랫폼에 대한 개념도 바꿔야 한다. 지자체가 만드는 플랫폼은 대부분 경쟁력이 없었다.
-컨설팅을 통한 성공 모형이 있었나?
지역의 포토존을 발굴하고 사진을 찍어서 여행 콘텐츠로 발굴하는 노하우가 없었다. 이런 곳만 잘 발굴해도 사업 모형이 나온다. 관광벤처 스냅존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피크닉세트 대여와 결합해 지역 사업체에게 사업 모델을 전수해주고 있다.비대면축제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엑스크루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팬덤을 가진 크루들을 플랫폼에 모아두었다. 원래 오프라인 행사 위주였는데 코로나19로 못하게 되자 온라인 축제를 기획했다. 팬덤을 가지고 있는 그룹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온라인 축제 기획사로 바뀌었는데 오프라인 플랫폼 때보다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기업체 행사 대행업체 필더필도 오프라인 교육, 워크숍,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해 매출이 두 배 정도 올랐다. 경상북도에서 기획전을 했을 판매 채널에 상품을 공급해 주는 밴드사 역할을 하는 넥스트스토리는 입찰 규모가 15억인 용역을 따내기도 했다.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회원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자체에 컨설팅할 때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지자체 관광상품을 기존 OTA((Online Travel Agency 온라인여행사) 플랫폼을 이용해서 판매하면 통합 데이터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자체에만 올리면 다른 플랫폼에 퍼질 수 없다. 지자체는 홍보마케팅 비용을 들여서 지원하거나 수수료 면제와 할인 등을 통해 활성화하는데 공동 플랫폼을 구축해 각종 OTA와 연동시켜 통합 데이터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는 경상북도를 시작으로 전라남도, 충청북도로 확대하고 있다.
-관광 개발과 관련해 지자체 행정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자신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해봐서 안다’가 아니라 ‘해봐도 안 되더라’라는 것이다. 조금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쉽게 포기한다. 잘 되고 있는 모형을 가져와서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좋은 선례를 보여줘서 같이 잘 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있다.
-지자체와 관광개발할 때 겪은 문제점은?
이웃 지자체끼리 잘 협력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섬진강을 사이에 둔 하동과 구례, 남해가 서로 교류를 안 한다. 지역 여행사도 둘을 묶는 패키지 구성을 안 한다. 인바운드 여행의 경우 여행사들의 모든 관심이 면세점 쇼핑에 집중되어 있다. 관광은 대충 시키고 빨리 쇼핑을 돌려야 해서 서울 경기에서만 외국 관광객을 돌린다. 일본은 지방공항 중심으로 인바운드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우리는 너무 집중되어 있다.
-네팔 대지진으로 자연재해에 대해 나름 내성이 생겼을 것 같다. 코로나19를 맞았을 때 어땠나?
관광산업은 항상 외부 리스크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왜 이런 충격이 올때마다 힘들어야 할까 고민했다. 유연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직원을 줄이고도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그런데 못했다. 기존 홀세일 여행사 중에서 코로나19때 제대로 된 대응책을 찾은 곳이 거의 없었다. 관성 때문에 그렇다. 사스 메르스 때 보면 무너질 회사는 무너지고 남은 사람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냥 버티기로 일관했다.
-홀세일 여행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1990년대 말에 홀세일 여행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해서 코로나19 전까지 20년 동안 성장했다. 그런데 무너지는 것이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OTA는 최근 10년 동안 주류로 성장했다. 관광업계는 10년 정도면 큰 변화가 나타난다. 유연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가 여행업에 어떤 변화를 주었다고 보는가?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어서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내 시장에 대해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기반이 있는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이 기간에 성장했다. 비즈니스모델을 빨리 바꿔서 비대면 솔루션을 만들어낸 기업들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웃바운드 관련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
한국은 세계 8위의 송출 국가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다음의 2위다. 일본보다 위다. 그런데 그만큼 관광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 이런 한국의 위상을 바탕으로 외국 관광청을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 중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관광업계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관광 데이터를 가진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그런면에서 영업점 위주인 여행사보다 OTA가 유리하다.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여행의 본질을 담은 기술이 미래의 관광산업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본다.
고재열 여행감독 gosisa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