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지옥’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이곳과 다른 점은 초자연적 현상의 존재다. 그 다름을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새진리회 교주 정진수(유아인)는 ‘지옥’이 구축한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20년을 살았다. 그래서 신의 의도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옥’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누구보다 외롭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는 인물인 정진수를 연기한 건 배우 유아인이다. 그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평범한 인물처럼 정진수를 연기해 기존 종교 교주의 클리셰를 깼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쿠키뉴스와 만난 유아인은 지난해 ‘지옥’ 대본을 열어보기도 전에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이 하는 이야기도, 작품을 쓰고 연출한 연상호 감독에게도 끌렸다. 동시에 연기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마음이 갔다. ‘지옥’이 공개된 후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자 “반갑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말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에요. 제 감상을 스스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요. 전 세계 1위라는 소식에 ‘이거 뭐야’, ‘무슨 현상이야’ 하면서 있었어요. 시청자들이 ‘지옥’을 쉽게 소화해주실까 하는 우려와 두려움이 조금 있기는 했어요. 저마다 다른 해석을 펼쳐주셔서 흥미롭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가장 기분 좋은 건 역시나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해주시는 점이죠. 연상호 감독님이 대단한 떡밥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유아인은 정진수를 ‘미스터리 그 자체’로 정의했다. 정진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시청자들이 궁금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내면이 드러나는 표현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연기하면서 외로움에 취해있던 자신의 20대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 한 인간이 도달하는 외로움이나 고독, 절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인간의 삶 밖으로 표현되는 지점이 있잖아요. 제가 정진수 만큼 극단적인 성향에 내몰린 기억은 없어요. 그럼에도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외로움, 고독, 절망이 어떤 식으로 발현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연기하면서 제가 20대 때 썼던 글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내가 지금 느끼는 느낌을 누군가 조금만이라도 알아준다면 내가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시기예요. 그 생각이 건강한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정적인 방식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의 마음을 외부로 전이하고자 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공감하면서 연기했습니다.”
‘지옥’이 공개된 후 유아인의 연기를 호평하는 반응이 많았다. 과거 남우주연상을 여러 번 받을 정도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지만, 대중은 또 한 번 그의 연기에 감탄하는 분위기다. 유아인은 “연기를 오래, 많이 한다고 연기력이 좋아지는 것 같진 않다”며 “배우가 고민하고 애쓰는 만큼 (연기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 구체화하는 방법에 있어 다양한 시도를 해요. 즉흥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연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죠. 그래서 연습도 하게 됐지만, 대사가 길고 장황한 장면은 사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철저히 계산하거나 대본을 달달 외우진 않아요. ‘지옥’에서 연 감독님이 당일 대사를 바꿔서 주신 적이 있어요. 어차피 제가 대사를 외워가지 않아서 변한 내용을 소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죠. 정진수는 어떻게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연기했어요. 그렇다고 모든 장면을, 모든 작품을, 모든 캐릭터를 그렇게 접근하진 않아요. 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죠.”
유아인은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는 대중을 실망시키기 싫어서다. 유아인은 “그 강박에 중독된 제 자신이 슬프기도 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모두 다르겠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길 바랐다.
“배우로 활동하는 게 제 일이잖아요. 전 일이 삶보다 중요해요. 삶을 살고 싶어서 일하고, 일을 잘하고 싶어서 삶을 잘 살려고 해요. 최근엔 노는 게 전처럼 재미없어서, 주어진 자유시간이 그다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아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한계에 도달한 순간, 그것을 부수려는 강박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못살게 굴고 도전을 이어가게 하는 노력을 해요. 그 노력을 등 떠밀리는 기분으로 애써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들어요. 때로는 한계를 넘지 못하는 순간도 있겠죠. 전 이만큼만 넘어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요. 한계를 넘어보고 싶어서 제가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