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성장과 함께했던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가 48년간 뜨거웠던 열정의 불을 끈다. 한국 철강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국내 제조업의 기반이 됐던 1고로의 퇴장은 그 당시 철강인들의 절실함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1973년 6월 9일 첫 출선(용광로 주철을 뽑아냄)한 포항제철소 1고로는 대일청구권자금 일부가 쓰여 만들어졌다. 자립경제를 위해서는 종합 제철 건설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당시 국민적 숙원사업으로 추진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세워진 일부 제철 시설이 있었지만, 군수 목적으로 만들어져 선철 생산 중심이었고, 고급 기술의 유출을 막아 조선인 숙련 기능인력이 제대로 양성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한국철강이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절실함이 숨어있다. 특히, ‘우향우 정신’을 강조했던 박태준 초대 포스코 회장(당시 사장)과 관계자들의 땀방울은 한국경제를 일으키는 노둣돌이 됐다.
박태준 회장은 고로 건설을 위한 자금조달부터 착공, 운용까지 전 과정을 챙기면서 제철보국 의지를 다졌다. 일본이 고로 등 제철소 건립 사용에 대일청구권자금의 전용을 허락해 줄 리가 만무했지만, 정부관계자와 일본을 찾아 전방위로 노력했고, 물밑 협상으로 제철소 건립 자금 확보를 성공시켰다.
박 회장은 당시 1고로 건립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모래바람 매서운 바닷가 허허벌판, 가진 건 종합제철 건립 성공으로 자립경제를 선도해야 한다는 제철보국의 의지뿐”이라면서, “선조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라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상징적 의미가 담긴 최장수 고로의 퇴장은 당시 열정을 쏟아부었던 이들의 절실함을 다시 상기시킨다. 1고로 건립 당시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계가 마주한 현실도 절실함이 필요하다. 그 당시 철강인들이 죽을 각오로 산업 전선에 나섰던 것처럼 지금도 탄소중립이란 대변혁의 시기에 절실함으로 맞서야 한다. “우리 세대만 넘어가면 괜찮아”라는 안일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포스코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하고 있지만, 미래는 녹록지 않다. 철강산업은 최대 탄소배출 산업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또한,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곧 마주해야 한다.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다면 더 이상 철강 사업을 이어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냉정히 과거와 비교했을 때는 오히려 현재 상황은 유리하다. 투자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있고, 가용 가능한 인재들도 있다. 전 세계에서 함께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도 다수다. 다만, 발로 뛰는 절실함보다는 전략적이고 영리한 절실함이 강조된다.
또한, 정부의 역할도 다시금 강조된다. 1고로 건립 당시에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치적인 갑론을박을 떠나서 한국경제를 성장시키고, 산업발전을 이루고자 한 모든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한결같았다.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사업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주도할 순 없지만, 기업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선제적으로 개선하고, 필요하다면 사후적 혜택도 마련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기자는 줄곧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하고, 기술개발을 해도 당장 적용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규제 위주의 제도로 인해 창의적인 아이템을 개발해도 오랜 시행과정에 지쳐 사업을 포기하거나 해외 진출을 고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기업과 사회가 직접 요구해야지만, 정부가 움직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가 먼저 나서 산업계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해야 한다.
탄소중립 관련 기술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시점에 기업 연구개발(R&D)과는 별개로 정부 차원의 대규모 R&D 투자는 반드시 선행돼야만 한다. 필요하다면 예비타당성 조사 과정의 획기적인 단축도 고려해볼 만하다. 경제계에 따르면 탄소중립 관련 예산이 실제로 현장에 투입되려면 빨라야 2023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루가 급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합의를 통해서라도 조속한 이행이 필요하다.
1968년 6월 3일. 뜨거웠던 포항제철소 1고로 첫 출선 모습처럼 국내 철강업계와 정부가 그날 그 당시를 상기하면서 절실함을 함께 고민해보길 바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