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딛고, 이젠 정규직”…쿠팡서 불가능 깬 권태향씨 [쿠키인터뷰]

“장애 딛고, 이젠 정규직”…쿠팡서 불가능 깬 권태향씨 [쿠키인터뷰]

쿠팡 장애인 정규직 근로자 1호 권태향씨

기사승인 2021-12-25 06:00:02
웃어보이는 권태향씨. 
네 살 즈음이었다. 동네 형들과 놀다 한쪽 눈에 돌을 맞았다. 한적한 시골이고 근처엔 큰 병원이 없었다. 보건소를 가면서 아픔을 꾹꾹 참았다. 왼쪽 눈을 잃게 될 줄은 몰랐다. 

“한 형이 놀다가 제눈에 돌을 던졌어요. 모두 가난하고 힘들던 시기라 제대로 된 치료나 보상을 생각하긴 힘들었어요.” 돌을 던진 그는 잘 살고 있을까. 눈을 다치게 한 걸 기억이나 할까. 한때는 그 순간을 원망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깨달았다. 또 다른 세상도 보였다. “서른 넘어 이것저것 경험해보니 지나간 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만 집중하면서 살았어요. 지금은 원망하지 않아요. 행복합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제가 있는 거니까.” 권씨는 공장 근로자, 콜센터 직원, 상담사 등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올해 5월에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쿠팡에서 정규직이 됐다. 정규직 전환은 종종 있지만 권씨는 특별하다. 쿠팡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첫 장애인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젠 쿠팡 정규직 장애인 노동자 1호가 된 긍정적 에너지의 남자, 권태향(37)씨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가 사는 곳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라남도 완도다.

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 힘들 때는 어머니의 응원이 큰 힘이 돼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뛰어들고부턴 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장애를 일부러 말하지 않고 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편견이 두려워서였다. “불편해 보인다고 물어와도 굳이 묻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한쪽 눈은 좀 보였거든요. 알게 되면 ‘어디까지 보이나’, ‘저건 보이나’ 등 괜한 질문을 받아요. 또 하필 공장은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곳이잖아요. 열 시간 넘게 강제적으로 일하다보니 한쪽 눈도 빨리 피로해졌어요.”

현장직은 어렵겠다고 생각해 사무직으로 눈을 돌렸다. 콜센터 직원과 상담사로도 일했다. 환경은 나아졌지만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러던 중 장애인고용공단으로 접한 쿠팡 채용 공고는 큰 기회였다. 재택근무가 가능해 완도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 '사이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족이다.

계약직으로 입사한 권씨는 쿠팡친구(배송기사) ‘리쿠르팅’ 팀에서 지원자 서류 검토와 소통 업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어요. 신용불량자인 지원자가 본인 통장으로 급여 입금이 가능한지 묻더라고요. 연배가 높은 분께 만 60세 이상이 넘어 입사가 불가능하다고 말씀 드린 적도 있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밖에 없어 미안했어요.”

올해 3월에는 ‘고객경험향상팀’으로 옮겨서 근무 중이다. 쿠팡친구나 쿠팡플렉스가 배송 중 수집하는 특이 정보인 ‘배송팁’을 검토하는 업무다. “배송 직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들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있어요. 고객의 초상권이나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침해될 수 있겠다 생각되는 것들을 삭제하고 정리하는 거죠.” 

정규직 전환 소식에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어머니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길 원했던 어머니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어서 기뻤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권씨는 “자신과 같은 사례가 늘어나려면 기업들이 장애인 채용인식을 계속 바꿔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업무 효율이나 성과가 떨어질 거라는 편견이 여전히 강해요. 주변에 1,2급 시각 장애를 가진 형,동생도 있는데 제가 못하는 부분도 척척 해내며 살아요. 근데 기업들은 장애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구색 맞추기’ 채용만 하려 해요. 이런 인식만 개선돼도 능력을 발휘하는 장애인들이 더 많아질 거예요.”

이 같은 현실에 미리부터 좌절하는 장애인 동료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비장애인과 같이 계약직으로 입사해도 결국 정규직 전환 기회는 비장애인에게만 주어질 거라는 인식이다. 

“장애인들은 습관적으로 걱정해요. 내가 열심히 해도 결국 ‘이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없겠지’라는 걸요. 차별 당한 경험이 쌓이면 일 열정 자체가 떨어져요. 저도 겪었던 일이에요. 처음 쿠팡에 입사 할 때도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참고 이겨내서 해냈어요. 시대가 변하긴 변했나 봅니다.”

권씨는 ‘장애는 작은 불편일 뿐 불가능은 없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장애가 있다고 불가능한 건 없다고 하거든요. 다리가 없어도 의족으로 비장애인보다 더 빨리 달리기를 하시는 분도 있어요. 꿈과 희망을 갖고 주어진 일에 몰입하다보면 길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취재기자_한전진 영상제작_박시온PD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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