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견디고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이 지닌 약효는 한의학에서 오래전부터 중요한 약재로 귀하게 여겨왔다. 오늘날 금은화의 약리 작용을 분석해 보면 항염증작용과 항균작용이 탁월하여 자연의 페니실린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이다.
금은화는 자라는 지역에 따라 겨울에 잎이 지는 낙엽성 식물이 되기도 하고, 상록성 식물이 되기도 하는 반상록 식물이다.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강인한 모습이 금은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줄기가 길게 뻗어 다른 물체를 감아 올라가는 여러해살이 나무로 긴 타원형의 잎은 줄기를 사이에 두고 가지런히 마주난다. 잎겨드랑이에 트럼펫 모양의 꽃이 2개씩 달리는데, 기다란 꽃봉오리가 벌어져 하얗게 피어난 꽃은 시간이 지나 가루받이가 되면 점차 노란색으로 변한다. 한 나무에 노란 꽃과 하얀 꽃이 함께 피어 있는 모습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 불린다.
인동과의 반상록성 관목이며 덩굴식물로서 각처의 산야에 나는데 충남 부여에도 많이 자생한다. 조선 영조 시대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부여현 진공편>에서 부여지역 특산품으로 금은화가 진상됐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부여의 금은화는 백제를 대표하는 역사 깊고 귀한 식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굳건한 모습으로 파란 잎을 떨구지 않는 금은화 줄기의 강인한 생명력은 미술과 건축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금은화 줄기의 꼬이면서 뻗은 모양은 벽화무늬로도 쓰였고, 백제무령왕의 관식(冠飾)이나 와당(瓦當)에도 금은화 줄기무늬가 쓰여 전해지고 있다. 선인들은 이런 금은화의 절개를 숭상하여 술로 빚어 마시고 선비의 기개를 함양하기 위해 금은화 꽃을 무늬로 그린 책보자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금은화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 곱고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부부가 아기가 몇 년째 없어서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삼신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이제 쌍둥이를 낳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태어난 쌍둥이 자매는 사이좋게 잘 지내다가, 언니 금화가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리게 되니, 동생 은화가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그만 동생 은화도 전염이 되어 함께 열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두 자매는 "열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은 하고픈 일도 다 못하고 죽으니, 우리가 죽으면 열병을 치료하는 약초가 될 거예요"하는 유언을 남기고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딸을 잃은 부모는 너무나 슬픔이 컸지만,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을 동산에 딸들을 장사지냈다. 그 후 일 년이 지난 어느 봄날, 두 자매의 무덤 위에는 이름 모를 싹이 돋아나더니 그 싹은 점점 자라나 덩굴은 이루어 무덤 주위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덩굴에서는 아름다운 노란색과 하얀색의 꽃이 피어나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그 때, 그 마을에 열병을 앓는 환자가 생겨서, 마을 사람들은 금화, 은화 자매가 남긴 유언을 생각했고, 자매의 무덤 주변에 있는 노란 색과 흼 색의 꽃을 달여 열병 환자에게 먹였더니 병이 완쾌했다. 그때부터 이 꽃을 금화와 은화 쌍둥이 자매의 꽃 곧, 금은화(金銀花)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금은화의 다른 이름으로 ‘인동초(忍冬草)’가 있는데, ‘추운 겨울을 참고 이겨낸다’는 뜻을 지닌 인동(忍冬)은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의연히 꽃망울을 떠트리는 금은화의 강인함을 잘 표현한 이름이다. 코로나로 지치고 힘든 시련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믿음을 잃지 않고 더 밝고 건강한 일상을 되찾길 믿고 바라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