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속고 있다. 사실 지구는 평평하다. 시속 1600㎞로 스스로 돌고 있지 않다. 당연히 시속 10만㎞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데도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진실은 우리는 지금 수천㎞의 평평한 둥근 원반 위에 살고 있다. 태양과 달은 공중에서 회전하고 하늘의 이미지는 일종의 CG다. 영화 ‘트루먼 쇼’(감독 피터 위어)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세트로 이해하면 된다. 미국 NASA는 이를 은폐하고 조작해 전 세계인을 속이고 있다. 수백 년간 숨겨진 진실이다. 지구가 둥근 것을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이런 세트를 만들고, 왜 진실을 숨기냐고? 그건 알 수 없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는 지구평면설을 다룬다. 유튜브로 지구평면설을 제기한 마크 서전트부터 이를 믿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평면 지구인(Flat Earther)이라 부른다. 지구평면설을 믿는 수많은 근거가 존재한다. 팟캐스트와 스트리밍 라이브로 방송도 한다. 유튜브엔 이에 동조하는 수많은 영상이 올라온다. NBA 선수 샤킬 오닐을 비롯해 유명인들도 이를 믿는다고 밝혔고, 방송에서도 종종 다뤄진다. 마크 서전트를 비롯한 평면 지구인들은 201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롤리에서 국제 학회까지 개최한다.
이처럼 허황된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것도 아주 많다니. 낯선 세계를 마주하기 전엔 경계심부터 든다. 이들이 진심으로 지구평면설을 믿는 걸 확인한 이후엔 음모론을 광신하는 괴짜거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의심도 든다. 하지만 아주 평범하고 대인 관계도 좋고 특별한 의도도 없어 보인다. 내부적인 갈등이 생겨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진실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다큐멘터리는 마크 서전트를 비롯한 평면 지구인들의 삶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인물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존중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귀담아 듣는다. 덕분에 지구평면설이 전파된 과정과 이를 믿게 된 과정, 서로를 생각하는 태도와 삶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 아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지구평면설을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평면 지구인들의 행복한 삶의 태도를 긍정하도록 설득해낸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이상하고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에 도달한다.
평면 지구인의 삶도 쉽지 않다. 자신의 믿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새로운 연인을 만나도 지구평면설을 이야기하면 멀어지고 만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방송인을 향해 정부에서 고용한 CIA 요원이라는 등 온갖 새로운 음모론이 덧씌워진다. 대신 지구평면설을 믿기 시작하며 아무것도 없던 삶에 활기가 생긴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SNS에서 만나고 친구가 되어 서로 의지한다. 처음 만난 사람, 서로 다른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고 격려하고 응원한다. 음모론과 가짜 뉴스에 몰입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를 알 수 있다.
과학계 전문가들은 지구평면설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흥미롭다. 비과학적인 허황된 얘기라 일축하는 대신, 그들의 주장도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과학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로 삼는 분위기도 있다. 무엇보다 지구평면설 자체를 재미있는 이벤트로 생각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대로 검증해보기도 하며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평면 지구인들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과학은 거짓말 할 줄 모른다. 실험을 거듭해도 예상 결과를 자꾸 벗어나자 평면 지구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길.
지금은 물론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의미를 가질 다큐멘터리다. 엉뚱한 가짜뉴스가 퍼질 때마다 최상단에 노출시키면 좋을 작품이다. 다음에 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