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음악을 시작해 3년 전 첫 미니음반을 낸 우크라이나 가수 케이트 소울은 요즘 기타보다 물통과 밥통을 더 자주 든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이들에게 음식과 차를 나누기 위해서다. 그가 지내는 곳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280㎞ 떨어진 도시 흐멜니츠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키이우를 침공하자 소울은 흐멜니츠키로 몸을 옮겼다. 소울처럼 전쟁을 피해 흐멜니츠키로 온 이들은 30만명이 넘는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소울은 “이곳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로를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 싱어송라이터에서 난민 봉사자가 된 소울에게 26일은 특별하다. 본업인 가수로 돌아가 사람들 앞에 서는 날이라서다. 그는 이날 한국구세군과 레드엔젤이 공동 주최하는 온라인 K팝 콘서트 ‘위 올 아 원 – 스톱 워’(We all are ONE - Stop War)에 출연한다. “26일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면 공연에 꼭 함께하고 싶다.” 그는 앞서 레드엔젤을 통해 보낸 영상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 초반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졌던 흐멜니츠키는 요즘 잦아지는 공습경보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소울은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하루에도 5번씩 울린다. 사람들은 지하실이나 방공호로 대피하고 있다”며 “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로를 계속 돕고 있다”고 했다.
이역만리 우크라이나 가수는 어떻게 K팝과 연결됐을까. 박재현 레드엔젤 대표가 들려준 얘기는 이렇다. 2006년 조직된 레드엔젤은 월드컵, 올림픽 등 세계적인 행사에 맞춰 응원콘서트를 열며 세계 50개 지역에 네트워크를 다져왔다. 러시아 침공 이후 전쟁 피해자를 지원하는 공연을 구상하던 중 폴란드 지역 관계자가 소울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소울 또한 참여 의사를 적극 드러냈다. 애초 소울은 공연을 사전에 녹화해 송출하려 했으나 최근 공습 등으로 촬영이 어려워져 생중계 참여를 결정했다. 그는 공연 첫 주자로 나서 전 세계 K팝 팬들을 만날 전망이다.
공연은 우크라이나에서도 입소문을 타며 현지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다가 터키로 피난 간 가수 겸 배우 자말라와 폴란드에 체류 중인 가수 제리 하일도 공연에 참여한다. 자말라는 유럽 음악 축제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2016년 우승한 인기 가수다. 남편 베키르 술래이마노프는 키이우에 남아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제리 하일은 2017년 데뷔해 우크라이나 음악 차트 5위까지 올랐던 유명인사다. 레드엔젤에 따르면 그는 “SNS에서 공연 소식을 접했다. 우크라이나 가수로서 가만있을 수 없다”며 참여 의사를 전해왔다. 그룹 라붐, 우아, 롤링쿼츠, 가수 비아이, 원호 등 K팝 가수들도 공연에 힘을 보탠다. 공연 수익금은 우크라이나 구세군에 전달된다.
미국 CNN이 인용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 집계에 따르면 24일 기준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선 1000명 넘는 민간인이 사망하고, 16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투가 치열해 보고되지 않은 인원을 포함하면 사상자는 실제 집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을 피해 고국으로 떠난 이는 335만명에 달한다. 소울은 “이곳에선 매일 어린이와 어른들이 폭탄과 로켓 때문에 죽어간다”며 “이 잔혹함을 멈추기 위해 전 세계 모든 분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전쟁 반대 운동을 응원해주시기 바란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국제 사회에서 엄격한 제재를 받도록 정부와 동료 시민들을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표는 “K팝은 세계적인 팬덤을 갖고 있고 온라인에서도 파급력이 크다. 이 공연을 계기로 전 세계 젊은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