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중국 민항기 춘천 캠프페이지 불시착, 한·중 수교 ‘물꼬’

[한중 수교 30년]중국 민항기 춘천 캠프페이지 불시착, 한·중 수교 ‘물꼬’

기사승인 2022-05-05 07:00:09
중국 민항기 납치범 모습. 왼쪽부터 장훙쥔(姜洪軍), 줘창런(卓長仁), 까오동핑(高東萍), 왕옌다이(王豔大). (독자제공)

지난 1983년 5월5일 어린이날, 중국 깃발을 단 민항기가 기왓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큰 소음을 내며 강원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했다.

당시 거리에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강원 춘천시 캠프페이지 인근에 살던 주민들은 실제 전쟁이라도 났을까 공포에 떨었어야만 했다. 

아울러 중국은 6·25 때 100만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해 한국을 맞섰던 국가이기도 해 긴장감을 더했다.

박근홍 춘천시 근화동통장협의회장은 “당시 중국 민항기가 1회 착륙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고 2회째 때 캠프페이지에 착륙하면서 활주로 끝에 불시착 하게 됐다”며 “특히 동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기왓장이 떨어져나갈 정도의 소음이 있어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불시착 이후 당시 철책선을 경계로 경비가 삼엄해지고 많은 지역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기도 했다”며 “학교 갈 때도 며칠 정도 철로 옆길을 돌아가고 그랬던 기억이 났다”고 전했다.

중국 민항기는 선양을 출발해 상하이를 향하던 도중 줘창런(卓長仁) 등 납치범들에 의해 탈취됐으며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 하게 된 것이다. 

춘천 세종호텔 현재모습. 

민항기에는 납치범 포함 총 105명이 탑승해 있었으며 이들은 불시착 후 현 춘천 세종호텔에 하루 동안 머물게 됐다.

쿠키뉴스 강원본부는 유일하게 세종호텔에 머물던 납치범들을 취재한 김옥태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씨는 “당시 한국일보 기자 신분이었다. 취재를 위해 세종호텔을 가보니 현장 통제가 삼엄했다”며 “하지만 호텔 뒤쪽 산 흙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텔을 들어서자마자 만난 사람들이 처음에는 납치범인지 몰랐다”며 “하지만 이야기 하다 보니 일반 승객과 납치범들의 목적지가 달라 눈치 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납치범들은 바깥 경비를 어떻게 뚫고 들어왔냐’고 되묻기도 했다”며 “다음날 민항기 일반 승객들은 서울 워커힐 호텔로 옮겨졌고 당시 자연농원(에버랜드)에 초대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서울 롯데호텔 부페식당 크리스탈 룸에서 서울시청쪽을 바라보고있는 민항기 승객들. (독자제공)

아울러 “본국으로 돌아갈 때도 텔레비전 등 각종 선물과 함께 보내졌다”며 “납치범들은 망명희망국인 대만으로 추방됐지만 대만정부가 집 등 먹고 살 수 있는 물질을 주며 환영했다”고 전했다.

특히 “당시 민항기 내에서 납치범들에 의해 총상을 입었던 부기장과 인연이 돼 알고 지냈다”며 “하지만 2015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으로 ‘당시 총상을 치료해 준 군의관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3년 중국 민항기(중국민용항공 296편)가 강원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한 것은 중국과의 수교에 물꼬를 튼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은 33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민항기 불시착 사건을 처리하고 협상하게 됐으며 이를 계기로 양국 간 비공식 교섭 채널이 개설됐다.

이후 1992년 8월24일 베이징에서 당시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양국 수교 공동성명에 정식 서명하면서 올해로 정식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납치됐던 승객들이 김포공항에서 귀국하기 위해 상하이행 민항기에 탑승하고 있는 모습. (독자제공)

춘천=한윤식·하중천 기자 ha33@kukinews.com
하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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