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5월5일 어린이날, 중국 깃발을 단 민항기가 기왓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큰 소음을 내며 강원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했다.
당시 거리에는 사이렌소리와 함께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강원 춘천시 캠프페이지 인근에 살던 주민들은 실제 전쟁이라도 났을까 공포에 떨었어야만 했다.
아울러 중국은 6·25 때 100만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해 한국을 맞섰던 국가이기도 해 긴장감을 더했다.
박근홍 춘천시 근화동통장협의회장은 “당시 중국 민항기가 1회 착륙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고 2회째 때 캠프페이지에 착륙하면서 활주로 끝에 불시착 하게 됐다”며 “특히 동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기왓장이 떨어져나갈 정도의 소음이 있어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불시착 이후 당시 철책선을 경계로 경비가 삼엄해지고 많은 지역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기도 했다”며 “학교 갈 때도 며칠 정도 철로 옆길을 돌아가고 그랬던 기억이 났다”고 전했다.
중국 민항기는 선양을 출발해 상하이를 향하던 도중 줘창런(卓長仁) 등 납치범들에 의해 탈취됐으며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 하게 된 것이다.
민항기에는 납치범 포함 총 105명이 탑승해 있었으며 이들은 불시착 후 현 춘천 세종호텔에 하루 동안 머물게 됐다.
쿠키뉴스 강원본부는 유일하게 세종호텔에 머물던 납치범들을 취재한 김옥태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씨는 “당시 한국일보 기자 신분이었다. 취재를 위해 세종호텔을 가보니 현장 통제가 삼엄했다”며 “하지만 호텔 뒤쪽 산 흙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텔을 들어서자마자 만난 사람들이 처음에는 납치범인지 몰랐다”며 “하지만 이야기 하다 보니 일반 승객과 납치범들의 목적지가 달라 눈치 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납치범들은 바깥 경비를 어떻게 뚫고 들어왔냐’고 되묻기도 했다”며 “다음날 민항기 일반 승객들은 서울 워커힐 호텔로 옮겨졌고 당시 자연농원(에버랜드)에 초대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본국으로 돌아갈 때도 텔레비전 등 각종 선물과 함께 보내졌다”며 “납치범들은 망명희망국인 대만으로 추방됐지만 대만정부가 집 등 먹고 살 수 있는 물질을 주며 환영했다”고 전했다.
특히 “당시 민항기 내에서 납치범들에 의해 총상을 입었던 부기장과 인연이 돼 알고 지냈다”며 “하지만 2015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으로 ‘당시 총상을 치료해 준 군의관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83년 중국 민항기(중국민용항공 296편)가 강원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한 것은 중국과의 수교에 물꼬를 튼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은 33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민항기 불시착 사건을 처리하고 협상하게 됐으며 이를 계기로 양국 간 비공식 교섭 채널이 개설됐다.
이후 1992년 8월24일 베이징에서 당시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양국 수교 공동성명에 정식 서명하면서 올해로 정식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했다.
춘천=한윤식·하중천 기자 ha3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