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소리지만 감내하겠다. 나는 대중가요라 불리는 것의 가사가 세상 속 위선자들로 밝혀진 그들의 떠들썩했던 시보다 훨씬 훌륭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 중 하나이다. 어떤 가수의 노래는 그 어느 시인의 시보다도 시대와 사회를 관통했고 용기 백배 했기 때문이다. 가수 정태춘이 그렇다.
그는 지난 1980년대를 또렷하게 상징하는 가수다. 고음을 오가는 샤우팅도, 부드러운 미성도 아닌 중년의 베이스, 날것의 모양으로 소리를 낸다. 가슴을 울리는 시적 노랫말은 떠나온 고향 그리고 성장에 대한 향수와 불교적 서정성을 그득 담아낸다. 운율은 지난 시간을 담아내는 시조가 되기도 하고 안단테의 교향악이 되기도 한다. 그의 노래는 느리지만 화살 같았고 무거웠지만 민들레 같았다.
그의 노래를 통해 청춘의 처연한 파편을 위로받고 이별을 보듬어 본 이들이라면 노랫말의 진정성을 익히 안다. 시류에 따라 대중의 기호에 부합한 유행가를 넘어 곤혹스러웠던 시대의 아픔을 그의 노래는 외면하지 않았다. 때론 날선 비판과 통렬한 사회성마저 내재했다. 무엇이 음유시인이었던 그의 노래의 사조를 바꾸었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암울했던 시대 탓이리라. 어쩌면 그의 말대로 초기의 노래들은 개인적 일기였지만 사회적 일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영광을 넘어 지금은 숱한 비판과 욕을 먹는 일부 386세대는 사실 정태춘의 노래 연대기와 맥을 같이 한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노랫말이 변모되는 여정 속에 386세대의 공동체에 대한 고민의 방향과 무게도 함께 연동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태춘의 삶은 서민의 호흡이었으며 일부 386들에게 시대에 대한 저항은 속물처럼 으스러진 욕망으로 변질됐음을 이제는 안다.
사회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함께 했던 어느 가수의 부동산 문제로 실망하는 이들이 속출할 때에도 가수 정태춘의 고행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소위 잘나가는 가수로 살아 본적도, 살아가지도 않은 그는 여전히 사회문제에 결기를 지녀가고 있었고 약자들의 그늘에서 언제나 그들과 노래로서 연대했다. 그의 노래에 존경을 지니는 이유이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북한강에서’,‘떠나가는 배’를 흥얼거리며 늦은 저녁 온몸을 불사르는‘촛불’의 그 처연함에 가슴이 주황빛으로 채색되던 그의 노래들은 언제부터인가‘92년 장마, 종로에서’는‘다시는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말라’고 일갈한다. 한때 그의 고혹한 서정에 눈물을 흘렸던 이들은 그의 절망과 분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의 가사들은 우리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한국 사회였으며 오늘을 두서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음을 이윽고 발견한다. 그의 노래가 안겨주는 성찰의 힘이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역사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시절 저항의 목소리가 사회운동 경력의 완장이 되고 현세를 호가하는 이들의 이면에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덕지덕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정태춘의 노래는 일관적인 톤으로 그들을 때로는 그들 진영과 반대편인 듯싶지만 동류의 이들을 점잖게 꾸짖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노래 중‘아치의 노래’말은 선택적 정의의 오류에 빠져 하등 불필요한 진영논리 속 시민의 자각을 일깨우고 있다. 참으로 탁월하다.
좌든 우든 덜 나쁜 정치인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정치를 통해 시민의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시류를 따라 유행가처럼 흐르는 노래도 폄하할 마음도 없다. 그 또한 일상의 위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에게 시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노래를 들어야 될 일은 열린사회 속 시민의 교양이기도 하다. 우린 너무 편하고 듣기 좋은 노래에 익숙해있었다. 불편한 노랫말이 진실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돌아보니 정태춘 그의 노래는 우리의 노래였다.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내게도 그의 노래는 일관성과 공동체에 대한 바른 책임을 일깨운다. 정태춘, 그는 노래도 삶도 빛났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그의 노래 인생을 담은 다큐 영화, ‘아치의 노래’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