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바이오빅데이터’를 구축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주요 먹거리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정부 주도로 국내 인구의 질병 및 임상 정보를 총망라하는 정보 소스를 마련, 민간 부문과 공유해 연구개발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의료정보의 상업적 활용에 대한 의견은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런 만큼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품질·기술 고도화에 방점이 찍혔다. 윤 대통령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은 수출액 257억달러(약 31조8000억원), 일자리 98만개를 창출했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수출액 600억달러(약 74조 3000억원), 일자리 150만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업계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산업계 친화적인 바이오헬스 육성 전략을 약속했다. 총리 직속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설치해 국내 기업들의 신약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칸막이 규제와 민·관 소통창구 부족 등 고질적인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또 기업들의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내년까지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의료서비스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비대면 진료, 주상담의 제도를 활성화한다는 구상도 냈다.
가장 주목받은 과제는 바이오빅데이터 구축 사업이다. 국내 인구의 의료서비스 관련 데이터는 질병관리청,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청 등 복수의 공공기관이 각각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이들 기관이 축적한 데이터는 해외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양적·질적으로 수준이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공공보험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대부분을 포괄하고, 정부 주도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생애주기별 건강검진 및 영양조사를 실시하는 국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양질의 공공의료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제기해 왔다. 앞서 2020년 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하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익명화한 공공의료데이터를 신약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 우려는 물론, 공공재의 상업적 활용을 허용할 수 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한국형 뉴딜’의 일환으로 바이오빅데이터 구축·활용을 언급했지만, 퇴임까지 가시화한 산업계 변화는 없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부진했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에 재시동을 걸었다. 여러 공공기관에 산재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빅데이터화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앞서 2012년 개관한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이하 바이오뱅크)의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 바이오뱅크는 그동안 혈청, 혈장, 소변 등 비교적 단순한 데이터를 보관했다. 앞으로는 임상 정보, 전장유전체 분석 정보 등을 축적할 계획이다.
윤석열표 바이오빅데이터에 대한 여론은 엇갈린다. 시민사회계는 의료 상업화를 부추기는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겨냥해 “환자의 감염병 진료기록, 정신과 진료기록, 가족력·유전병에 대한 정보, 성병, 임신중절 경험 등 민감한 개인건강정보들을 활용하여 상품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민간보험회사, 통신회사 등은 (공공의료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이) 오랜 숙원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국민의 의료정보가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반면, 산업계의 기대는 높다.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안이 오랜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바이오빅데이터가 희귀·난치성 질환 신약 개발을 앞당기면, 혜택은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현재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AI와 빅데이터 활용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됐다”며 “이런 기술이 접목된 환자 관리와 신약 개발을 시도하려면, 그 근간에는 유전체정보를 포함하는 바이오빅데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영국은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한 바이오빅데이터를 구축해 산업과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들 국가보다 뛰어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후발주자로 남겨진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