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엔젠시스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앞으로 더 빛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28일 서울 강서구 헬릭스미스 사옥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고 헬릭스미스의 유전자치료제 연구개발 현황을 공개하며 ‘엔젠시스’ 이외의 잠재력에 주목해줄 것을 요청했다. 신약후보물질 ‘엔젠시스’의 당뇨병성신경병증(DPN) 임상 3-2상 중간분석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자사의 파이프라인과 연구개발 인프라 역량을 피력하기에 나선 것이다.
유전자치료제는 암을 정복할 수 있는 바이오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화학적 합성으로 제조되는 케미칼 의약품과 달리, 생물에서 유래한 세포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진다. 공장 설비를 활용한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지만, 연구시설에서 환자 개인의 특성에 최적화된 맞춤형 치료제가 생산된다.
헬릭스미스의 주력 기술은 CAR-T세포치료제와 플라스미드DNA,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등이다. 유승신 대표는 “신약개발의 전 주기 과정에서 활용되는 기술을 플랫폼으로 사업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에 따르면 헬릭스미스는 CAR-T세포치료제를 시작으로 올해 8월부터 위탁개발생산(CDMO)사업을 개시한다. CAR-T세포치료제는 환자에게서 세포를 채취해 유전자 재조합을 거쳐 다시 환자에게 투약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진행된다. 헬릭스미스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설비와 자체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플라스미드DNA 기술이 적용된 신약 후보물질 ‘NM101’도 개발 중이다. 플라스미드DNA는 유전자치료제의 원료 물질로, NM101는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 ‘IGF-1’를 발현하도록 조작됐다. 근육에 주사해 근육 및 말초신경의 재생을 촉진하는 핵심 기전이다. 말초신경병증과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AAV 기술을 적용한 신약 후보물질은 ‘VM301’를 개발하고 있다. AAV는 인위적으로 재조합한 유전자를 체내 무사히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유전자 전달체 벡터다. NM301은 간세포성장인자 ‘HGF’를 발현하도록 제작됐으며, 척수강 내 주사해 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 기전이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을 비롯한 퇴행성 질환의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NM101와 VM301는 아직까지 비임상 단계에 있다. 유 대표는 이르면 2024년 또는 2025년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엔젠시스 3-2상 순조로워… IDMC권고 다음달 예정”
엔젠시스는 그동안 헬릭스미스를 대표하는 파이프라인으로 이목을 끌어왔다. 동결건조 상태의 분말을 희석해 환자의 심장 종아리 손 또는 발에 근육주사하는 방식으로 투약하는 유전자치료제다. 신경세포의 재수초화와 신경액손의 성장, 혈관 생성을 촉진한다. 손상된 신경과 미세혈관을 재생해 통증 감소와 근육 퇴행 개선 효과를 얻는 것이 목표다.
엔젠시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2018년 5월 첨단재생의약치료제(RMAT) 지위를 획득했다. 참고로 RMAT 지위가 부여된 유전자치료제 가운데 만성질환 치료제는 DPN치료제 후보물질 엔젠시스와 미국 바이오 기업 보이저 세러퓨틱스의 파킨슨병치료제 후보물질 ‘VY-AADC’ 등 2개 뿐이다.
엔젠시스의 임상 3-1상은 앞서 2019년 101명이 참가한 가운데 12개월동안 진행됐다. 그 결과 2상에서 도출된 결과와 큰 차이가 없는 데이터를 얻었다. 위약 대비 통계적 유의미성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일각에서는 ‘위약군 환자의 혈액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다’는 등의 약물혼용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헬릭스미스는 자체조사를 통해 약물혼용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선영 대표는 “국내에서는 임상에 실패했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네이처 바이오테크의 2021년 1분기 주목할 만한 임상결과로 선정됐고, CTS학술지에서는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논문 상위 10위에 올랐다”며 “국내의 의심과 달리 해외에서는 엔젠시스 임상 데이터의 가치가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임상 3-2상은 미국 현지 20개 기관에서 진행 중이다. 25일 기준 134명이 등록된 상태로, 오는 8월까지 152명을 등록하는 것이 목표다. 대상자 수는 오는 7월 FDA의 독립적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DMC)가 헬릭스미스측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객관적인 데이터만을 검토한 후 7월 중으로 유지, 조정, 중단 등을 통보한다. 이 통보는 권고이며 강제성은 없다. 헬릭스미스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3-2상은 내년 1분기에 완료될 전망이다.
박영주 임상개발부문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임상이 많이 지연됐기 때문에 3-3상을 곧 이어 준비하고 있다”며 “3-2상에서는 12개월 동안 2회 투약했지만, 3-3상에서는 3회 투약할 계획이며, 3-3b상에서는 6개월을 연장해 총 18개월까지 보다 긴 기간을 지켜볼 것”이라고 부연했다.
상업생산 가능한 700평 규모 자체 CDMO공장… 8월 시생산
이날 헬릭스미스는 사옥 5층의 연구실과 4층의 CDMO공장도 공개했다. 5층 연구실은 연구원들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지속적인 물질 관리를 위한 실험을 하는 장소다. 세포를 다루는 연구실의 특성상, 불필요한 접촉과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구획된 공간이 설치됐다.
연구실 소개를 맡은 이정훈 연구원은 “세포 연구는 배양을 골자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염에 굉장히 취약하다”며 “쉽게 설명하면, 냉장고 안에서도 음식이 상하는 것과 비슷하게 연구실 환경에서도 연구자가 의도치 않은 오염 요소가 배양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염, 감염 등으로 인해 부정확한 시험 결과를 얻게 되면 전체 실험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방된 공간에는 연구원들의 개인 실험대가 마련됐다. 벽을 따라 고가의 특수장비와 분석장비가 연구원들의 동선을 고려해 배치됐다. 이 연구실에는 약 30명의 연구원이 상주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본 연구실은 국내에 5대 미만으로 들어와 있는 형광현미경을 도입하고 있다”며 “남들이 관찰할 수 없는 요소를 관측할 수 있다는 유리함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자재가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연구자의 역량과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 성공적인 연구의 핵심이다”라고 부연했다.
이어 생산본부를 총괄하는 배경동 전무가 4층에 완공된 CDMO공장을 소개했다. 700평 규모로 지난해 9월 완공, 올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록을 마쳤다. 다만 본격적인 세포치료제 생산을 시작하려면 인체세포관리업 허가가 필요하다. 헬릭스미스는 이달 3일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CDMO공장은 사람, 제품, 자재의 동선이 전혀 겹치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방 속에 또 다시 여러개의 방이 있거나, 각각 구분된 복도가 하나의 방으로 향하는 등 미로같은 구조다. 헬릭스미스의 CDMO공장에는 총 103개의 방이 있고, 그 중 76개는 무균 상태로 유지되는 공간이다.
헬릭스미스 CDMO공장은 임상시료를 생산할 목적으로 준공됐다. 하지만 상업생산까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소량의 제품을 환자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세포치료제의 특성상, 대형 설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장 내 생산 및 분석용 장비는 총 141개가 설치됐으며, 8월부터 시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배 전무는 “마곡 지구는 연구개발 집중구역이기 때문에 임상시료만 생산할 수 있도록 규제되어 있지만, 공장의 인프라는 상업생산까지도 가능한 수준”이라며 “장비 설치, 운영, 품질 등의 적격성평가 자료를 모두 갖춰 오는 12월 GMP생산을 실시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