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사람이 모두 걸릴 수 있는 병이면 ‘수의사’도 협력해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해야죠.”
2003년 사스(SARS)를 시작으로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원숭이두창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신종 감염병을 살펴보면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수공통감염병이란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다. 이는 일부 동물에서는 상대적으로 질병의 위력이 약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에서는 별 임상 증상이 없지만 특정 동물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일부 의학자, 환경학자는 인수공통감염병 발생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속적인 환경 파괴와 더불어 서로 만날 일이 없었던 사람과 동물 생활권이 겹치면서 이러한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난 후, 전 세계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보건의료 대응체계 변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에 ‘젊은 수의사’들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 감염병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 나선 것이다.
이들이 이끄는 수의미래연구소(이하 수미연)는 지난 22일 보건부 독립과 산하 동물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2년 반의 코로나19 방역, 그 속에 ‘수의사’도 있었다
2년 반이 넘는 코로나19 방역 인력 속에서는 의사, 간호사, 약사 외에 수의사도 포함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는 수의사 공무원이 약 180명 정도 존재하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수의사관은 역학조사에 동원됐다.
일례로 군에서 백신 접종 등의 침습적인 행위는 의사 군의관이 담당한다면, 수의사관은 확진자에 대한 동선 관리나 역학으로 걸린 사람들에 대한 과학에 근거한 업무를 수행한다. 즉 의사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접종이나 치료 등을, 수의사는 군집 단위에서의 방역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수의사 국가시험에는 임상 의학만 출제되는 의사나 치과의사 국가시험과 다르게 미생물, 전염병, 병리, 공중보건 등 인수공통감염병과 관련된 과목이 상당부분 출제된다. 그만큼 인수공통감염병 기전과 방역에 있어서는 수의사의 전문성이 높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한 이와 관련 이미 많은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의 기초 및 예방 분야 교수로 수의사가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수미연은 이러한 수의사 역량을 토대로 감염병에 대한 새로운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조영광 수의미래연구소 대표는 “일반적 의료인이 아닌 방역에 대한 전문성을 토대로 수의사 활용이 필요하다. ‘방역’은 개인의 보건과 큰 틀에서 동물이 포함된 군집의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물 건강은 당연히 수의사가 가장 잘 안다. 새로운 보건의료체계 속 수의사 역할은 인간에게 병원체가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단계까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며 “인간에게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가 들어간 이후에는 의사 영역인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인간을 둘러싼 동물 생태계에서 바이러스 변이나 출현 상황을 파악해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건강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그는 보건부 ‘동물청’ 신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질병관리청 ‘감염병정책국-인수공통감염병관리과’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하나의 ‘과’ 수준에서는 제대로 된 과학에 기반한 국가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보건부 산하 ‘동물청’ 필요한 이유…“방향 자체가 다르니까”
그렇다면 수의사 단체가 제시한 보건부 산하 ‘동물청’은 현재 질병관리청 소속의 ‘인수공통감염병과’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단하게 보면 이렇다. 의사 입장에서 본다면 수많은 질병 중 하나가 코로나19나 원숭이두창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지만, 수의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동물에서 사람으로의 유입을 차단하고 예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따라서 동물청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을 다루게 된다면 훨씬 더 중추적으로 그 업무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수미연의 입장이다.
보건복지부가 아닌 ‘보건부’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적이다. 보건부 독립은 수년 전부터 보건의료인 단체가 요구해온 부분으로, 이번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대한 방역 정책의 한계를 느끼면서 복지와 보건을 별개로 운영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조 대표는 “지금의 보건복지부라면 현실적으로 수의사와 거리가 있다. 사회복지에 치중된 보건복지부 보다는 과학적 방역에 집중할 수 있는 보건부여야 동물청의 역할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보건의료계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의사나 치과의사, 약사 개인 경우는 수의사의 주무부처 이관에 대해 크게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며 “다만 개인적으로는 의사협회나 치과의사협회는 긍정적, 현재 동물약품과 관련돼 수의사와 이권 다툼을 하고 있는 약사회의 경우는 부정적인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수의사 역할을 그저 ‘동물을 돌보는 사람’으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부탁했다.
그는 “대중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반려동물 분야에 몸 담은 수의사는 60%가 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관리청 등 국가기관에서 연구와 대응에 힘쓰고 있는 수의사도 다수 존재한다”며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인간과 동물의 과학에 기반한 공존’에 대한 미래 설계와 연구를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한다. 수의사들은 그러한 국민과 국가의 요구에 대해 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