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가 경제 붕괴로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가운데 대통령과 총리가 사임했다. 사퇴 시위를 벌인 국민들은 여전히 식량과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이 달아난 관저에는 현금다발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때 인도양의 국제무역 요충지로 주목받으며 고성장을 해왔던 스리랑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봤다.
◇스리랑카, 국가 부도의 날
스리랑카 경제가 '국가부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올해 4월 대외부채 상환을 일시 유예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5월 18일 공식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스리랑카는 현재 510억 달러(약 66조원) 규모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2026년까지 250억 달러(약 32조원)를 상환해야 하고, 올해에만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와 지급해야 할 이자가 70억 달러(약 9조원) 가량이지만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화 가치가 80% 넘게 떨어지면서 환율은 1달러당 360 스리랑카 루피를 넘어섰다. 이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뜩이나 통제 불능 상태였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더욱 악화했다.
정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식료품 물가는 5월 기준으로 전년대비 57% 상승했다. 스리랑카 재무부는 자국의 외화보유고가 2500만 달러(약 324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휘발유와 우유, 식용유, 휴지 등 생필품조차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관광산업 망하고, 정치인 부패하고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관광 산업의 붕괴였다. 2019년 4월 21일 콜롬보 시내 성당과 호텔 등 전국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자살폭탄이 터져 260여명이 목숨을 잃은 '부활절 테러'로 관광객이 급감했다. 이후 이듬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스리랑카 관광 산업을 재기 불능하게 만들었다.
스리랑카 관광 산업은 2018년 44억 달러(약 5조7000억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의 5.6%를 차지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6억8200만 달러(약 9000억원)에 그치면서 GDP에서 비중이 0.8%로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라자팍사 대통령이 2019년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를 밀어붙이는 등 재정정책 실패까지 겹치면서 국가재정이 더욱 악화했다.
반정부 시위대는 2005년부터 권력을 쥐고 스리랑카를 통치해온 라자팍사 가문의 부패와 실정을 '국가 부도'의 원인으로 꼽아왔다. 현재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과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사임했다. 극심한 경제난에 성난 스리랑카 시위대가 점거한 대통령 관저에서 다량의 현금다발이 발견됐다.
고타바야 대통령의 동생인 바실 라자팍사 전 재무부 장관은 정부 관련 각종 계약에서 10%씩 커미션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스터. 텐 퍼센트'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의 부정부패와 무능이 스리랑카의 경제를 무너뜨렸다고 야권과 시위대는 비판해왔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