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가 없는 기전의 항암제가 국내에서 개발될 수 있을까. 국내 과학자와 의사가 암세포 발생을 조절하는 기전을 규명했다. 조재열 성균관대학교 생명공학대학 융합생명공학과 교수, 김지혜 성균바이오융합과학기술원 연구교수, 허훈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교수는 암세포가 자라나기에 앞서 특정 물질의 발현이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 항암 치료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9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학교 캠퍼스에서 조재열, 김지혜, 허훈 교수 연구팀을 만나 최신의 위암 치료 및 연구 경향과 새로운 치료물질 연구 계획을 들었다. 연구팀은 최근 종양 억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효소와 그 작용 기전을 최초로 규명했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캔서 레터스(impact factor 9.794)’에 ‘EEF1AKMT3/MAP2K7/TP53 축은 위암에서 종양 침습성과 전이를 억제함’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조 교수와 김 교수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 허 교수는 위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연구팀은 실험실과 임상을 아우르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허 교수가 임상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경험을 공유하고, 조 교수와 김 교수가 이에 기반해 연구실에서의 발견을 구체화한다.
한국인 위협하는 위암, 어떤 질병일까
허훈 교수: 쉽게 설명하면, 이름 그대로 위에 암세포가 생기는 병이다. 암세포는 빠르게 자라나고 일정한 부위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에 생긴 암도 위의 바깥인 복막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림프나 혈액 등 인체 내 흐름에 따라 위 이외의 다른 기관이나 장기로 전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병기에 따라 침습적으로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면 수술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위는 멧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기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입으로 씹어서 잘려진 후에 위에서 더욱 잘게 갈려 점차 소화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암은 위가 이런 역할을 하는 걸 방해한다. 그러면 환자는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암세포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을 꼽으면 위암은 항상 상위권이다. 환자가 많아 데이터도 많다. 연구자료가 상당히 많이 축적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건강검진에 위암검진이 포함되어 있어, 만 40세 이상이면 2년마다 위내시경 검사를 진행한다. 덕분에 다른 암과 비교하면 빨리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수술이 가능한 상태에서 발견하면 예후도 좋다. 다만 발견이 늦어 이미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경우, 수술이 불가능하고 치료제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안타깝지만 위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항암제의 선택지가 충분하지 않다. 위암 환자가 많아도, 시도할 수 있는 치료는 몇 가지 없는 실정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획기적인 항암 신약을 많이 개발하고 있지만, 위암 치료에 적합한 효과성을 보이는 경우 드물다. 다른 암에 쓰이는 치료제를 위암 환자에 활용해도 생존 기간을 2개월 정도 연장하는 수준의 통계적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2개월 연장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결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다 획기적인 치료 옵션이 필요하다.
기존 항암제 패러다임 전환할 신약 나올 수 있을까
조재열 교수: 지금까지 항암제는 모두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전이었다. 항암제는 화학적 항암제, 표적 항암제, 면역 항암제 등 1~3세대를 거치며 진화했다. 1세대 화학적 항암제는 암세포가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을 겨냥한다. 그래서 암세포 이외에도 성장 속도가 빠른 점막, 모낭 등 정상세포까지 타격을 준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정상세포를 비켜가 암세포만 타격하는 원리, 3세대 면역항암제는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를 타격하는 원리다. 방식은 다르지만 암세포를 공격해 병세를 완화한다는 기본 접근은 다르지 않았다. 항암제의 부작용 대부분은 이런 기존의 원리에 따라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기존의 항암제를 수개월 쓰다보면 암세포가 타격을 입는 정도가 점차 미미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항암제를 바꿔야 한다.
위암세포가 자라나는 원인을 규명한다면, 새로운 기전의 항암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세포가 정상으로 자라날 때와 비정상적인 암으로 자라날 때의 차이를 확인하면, 암이 아닌 정상세포가 증식하도록 체내 반응을 안정화해 결과적으로 암세포의 발생을 억제하게 되는 원리다.
우선, 위암 환자의 64%의 환자에서 ‘EEF1AKMT3’의 단백질 발현이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EEF1AKMT3는 우리 몸 속 단백질의 메틸화를 조절하는 효소다. 메틸화는 단백질의 특정 아미노산 잔기의 수소 원자를 메틸기로 치환하는 반응이다. 어려운 단어들이 많지만, 쉽게 말해 어떤 유전자가 발현될지 관여한다는 의미다. 임상 자료를 분석했더니 EEF1AKMT3 발현이 감소한 환자는 예후도 좋지 않았다.
김지혜 교수: 중요한 발견은 EF1KMT3의 단백질 발현이 감소하면 ‘TP53’의 분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TP53는 암세포 사멸을 촉진하고 전이를 억제하는 유전자인데,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한 종양 억제 유전자다. 즉, EF1KMT3가 우리 몸에서 종양이 발생하는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어느 정도로 발현할지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반대로 정상세포가 자라나도록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EF1KMT3의 단백질 발현이 증가하면 TP53가 분해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종양 발생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암 세포주를 활용한 연구 결과, EEF1AKMT3가 많이 발현되면 TP53의 상위 조절 인자인 ‘MAP2K7’라는 효소의 메틸화를 거쳐 TP53 신호전달에 연관된 유전자들의 발현도 증가했다. 그 결과 TP53가 안정화해 정상 세포를 유지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새로운 기전의 항암제 나온다면… 기대와 과제는
김지혜 교수: 연구 중 위암 환자들의 위암 조직에 대한 단백질 분석 데이터에서 EEF1AKMT3의 단백질 발현이 감소한 환자의 비율이 64%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연구에서 발견한 기전을 적용한 위암 치료로 의미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도 최소한 64%는 될 것이다.
하지만 실험실의 이론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지속적으로 추가 연구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연구가 더 나아가 실제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면 약의 형태를 설정하거나, 적절한 환자와 투약 방식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재열 교수: EEF1AKMT3의 종양 억제 기능을 규명한 연구는 이번이 최초다. 특히 EEF1AKMT3, MAP2K7, TP53 사이의 상관관계가 전이성 또는 재발성 위암 환자들의 조직에서 보다 유의미하게 관찰된 만큼, 이런 유형의 환자들의 치료에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활용될 수 있는 범위가 반드시 위암에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암 치료에 적용할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실제로 위암 치료에 적용하는 단계를 언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계속해서 후속 연구를 이어가 향후 약 5년 안에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