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 감독 영화엔 언제나 함께 몰려다니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가 연출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장기하 노래와 함께 조폭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장면이 아니어도, 매번 남자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에 따라 색깔이 달라졌다. 때로는 코믹하게 희화화했고, 때로는 세상 심각하게 비췄고, 때로는 엇갈린 인물들의 운명에 집중했다.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윤종빈 감독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정원의 요청으로 수리남에서 마약왕 전요환(황정민)과 거래를 하게 된 강인구(하정우)는 끊임없이 의심받는 처지다. 동시에 그 역시 전요환과 그 주변 인물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자신을 배신할지 의심한다. 지난 1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윤종빈 감독은 ‘수리남’을 마약을 다루는 장르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수의 장르물 마니아들이 아닌 많은 대중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처음엔 마약의 유래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코카인을 공부하고, 미국 DEA가 왜 만들어졌지 공부했어요. 하지만 ‘수리남’을 마약물로 보진 않았어요. 평범한 주인공이 위장 잠입하는 언더커버 류로 생각했죠. 악당이 마약상이라고 생각했고요. ‘수리남’을 연출하기로 결정한 다음 힘을 빼고 찍자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영화를 할 때 생각하던 작가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으려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수리남’을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국가인 수리남을 배경으로 했고 제목도 ‘수리남’이지만 드라마엔 정작 수리남이 등장하지 않는다. 수리남에서 촬영할 방법이 없어서 대부분의 장면을 국내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찍었다. 첸진(장첸)이 머무는 차이나타운은 전북 전주에서 오픈세트를 지어 찍었고, 최창호가 머무는 장면들은 부산에 만든 세트에서 찍었다. 전요환 목사를 따르는 신도들이 머무는 곳은 전북 무주에서, 전요환 목사의 집은 제주도에 야자수를 심고 찍었다. 공간은 대부분 비슷하게 만든 가짜였지만, ‘수리남’의 이야기는 실화의 주인공에게 직접 들은 진짜 이야기로 구성했다.
“이야기의 실존 인물에게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많이 물어봤어요.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 많은 걸 경험했더라고요. 엄청난 생존력을 갖고 있고요. 강한 영혼이란 인상을 받았어요. 그 이야기를 작품의 배경 이야기로 깔았어요. ‘수리남’에 나오는 배경 이야기의 80%는 실제에서 따온 거예요. 정말 가족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수리남에서 홍어를 파는 얘기도 실제예요. 주인공의 아버지가 홍어를 좋아한 건 각색이고요. 홍어가 가난한 아버지의 상징처럼 대물림되는 걸 해보려고 넣었죠. 너무 영화적이라 넣지 못한 얘기도 많아요. 예를 들면 그가 수리남에 돌아와서 전요환 편으로 들어가려고 머리를 밀고 차이나타운에서 계속 갱들과 싸웠다고 해요. 클리셰 같고, 너무 가짜 같아서 뺐어요.”
이날 인터뷰에선 윤종빈 감독의 작품에 여성 인물, 여성 서사가 적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윤 감독은 “제 영화는 남자들이 좋아한다. 여자 성향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여성을)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고, (남성이) 편해서 그런 것도 있다”고 답을 이어갔다.
“안 쓰려고 안 쓰는 건 아니에요. 전작인 영화 ‘공작’에서 여성 캐릭터를 넣으려고 했지만 어색하더라고요. 국정원 실장이나 북한 간부를 여성으로 했더니 좀 억지스러웠어요. ‘수리남’의 실제 얘기에도 여성 캐릭터가 없었어요. 국정원 팀장을 여성으로 해볼까 생각도 하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다 억지 같더라고요. 물론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서 이야기가 풍부해지고 균형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을 하면 또 고민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넷플릭스 시리즈로 공개된 ‘수리남’은 윤종빈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가 아닌 작품이다. 오랜 시간 영화를 해왔지만, 그 역시 관객들의 변화를 느낀다. 최근엔 눈과 귀가 즐겁고 스펙터클이 있는 이야기는 영화로, 그가 주로 했던 느와르는 OTT로 제작하는 분위기다. 윤 감독은 “사람 얘기에 가까운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건 일단 제가 하고 싶어야 해요. 그래야 제 모든 시간을 투자해서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좋잖아요. 영화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손해 보면 안 되니까요. 물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완전히 판타지나 SF 장르도 해보고 싶고요. 일단 해보고 사람들이 싫어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