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설립 논란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제주도에 이어 이번에는 강원도다. 강원도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법안이 발의됐다. 노동, 시민단체는 영리병원 단 한 곳도 들어설 수 없다며 극렬한 반대를 예고했다.
강원도에 영리병원 세워지나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의료민영화저지 운동본부), 민주노총 강원본부는 5일 서울과 강원도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죽었던 영리병원이 좀비처럼 강원도에서 살아나고 있다”면서 “코로나 대유행을 겪으며 그 어느 때보다 온 국민이 공공의료 강화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시기에 영리병원 추진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국민의힘은 법안 철회하라’, ‘영리병원 아니라 공공병원 확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강원도는 내년 7월 특별자치도가 된다. 이를 앞두고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보완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달 13일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강원 원주갑)은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관광‧교육‧의료산업 등을 강원도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발전시키기 위한 지원체계 마련이 발의 취지다.
개정안에는 외국 의료기관 개설을 허가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 허가를 받아 강원자치도에 병원, 치과병원, 요양병원,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외국 의료기관은 의료급여기관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역시 국민의힘 출신이다.
“국힘 의원 개인 일탈일 리 없다” 짙은 의심
영리병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병원이다. 운영 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지 않고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다. 과잉 진료, 의료비 폭등, 의료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미국 영리병원체인에 대한 15개 연구 메타 분석 결과,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사망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병원 수입) 10~15%를 투자자에 배분하고 경영진의 높은 보수로 인해 숙련 전문의료진을 덜 고용하면서 적용된 결과”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시민사회는 영리병원 하나가 들어서면 전국 확대는 시간 문제고, 공공의료 보루인 국민건강보험을 파괴할 것이라고 본다.이날 시민단체들은 강원도 영리병원 설립 추진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새로운 영리병원 추진 시도로 규정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무산되자 이번에는 강원도로 눈을 돌렸다는 지적이다. 박 의원은 과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전 제주도지사) 밑에서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박 의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기도 하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강원도 영리병원 법안 발의는 박 의원 개인 일탈일 리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리병원에 찬성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면서 “대통령실도 돌봄·요양·교육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의료 민영화 조치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 초선 의원이 대담하게도 이런 법안을 발의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원도민 응급의료시설 이동거리, 서울 10배…“영리병원 아닌 공공병원 필요”
강원지역 의료공백은 심각하다. 강원도 18개 시군 중 15개가 응급의료취약지다. 분만취약지는 14개다. 국토정보지리원이 발간한 ‘2021 국토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도민 응급의료시설 평균 접근거리(가장 가까운 응급의료시설까지 도로 이동거리)는 21.36km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가장 멀었다. 접근성이 가장 좋은 서울(2.87km)의 10배 수준이다.보건기관 접근성(가장 가까운 보건기관까지 도로 이동 거리) 역시 강원도가 5.08km로 가장 멀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지역은 전라북도(2.97km)다. 때문에 강원도 5개 의료원(강릉, 삼척, 속초, 영월, 원주)을 300병상 종합병원급으로 확충하고 춘천권 공공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의료민영화저지 운동본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등 노골적으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한 정권을 향한 대중 저항에는 항상 의료 민영화 의제가 있었고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고 경고했다.
국내 ‘1호’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은 지난 2018년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으로 개설 허가를 받았다. 제주도는 지난 6월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두 번째 개설허가 취소 명령을 내렸다. 이와 별개로 설립 법인인 녹지제주는 조건부 허가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고 지난 4월 1심 재판부는 “내국인 진료 제한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도가 이에 불복하면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