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14일 임명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 전면 개편과 인구 문제 해결에 본격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은 20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또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저출산, 고령사회화와 그 대책을 깊이 고민해온 적임자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는 지난 2006년 출범했다. 대통령 직속 기구이기 때문에 나 전 위원장이 사실상 위원장인 셈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 전 부처에 걸친 저출산, 고령화 정책을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5년마다 인구정책 근간이 되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는다.
윤 대통령은 전정부 인구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저출산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영국, 미국, 캐나다 순방을 마친 후 개최한 첫 국무회의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년간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5명까지 급락했다”고 지적했다. 또 부처들에 “인구 위기 대응에 있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 각오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 근본 해결법을 위한 방법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들었다. 서울·수도권, 대도시를 제외하면 노년층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젊은 층은 드물다. 서울 등 대도시는 생활 비용이 지방 도시에 비해 워낙 높은 만큼 결혼과 출산이 모두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나 전 의원이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조직 개편에도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사회고령위는 최근 부실운영 논란이 일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 및 저출산사회고령위에서 받은 위원회 운영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이후 위원회 사무처 인력 111명 평균 근무 기간은 1년6개월에 불과했다. 또 분과위원회 회의에 위원들의 낮은 참석율과 수의계약이 많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수의계약은 경매나 입찰 등의 경쟁계약이 아니라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하여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나 전 의원은 그동안 주거 불안정이 저출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서울시장 본경선에 진출해 청년과 신혼부부에 최대 1억1700만원 이자 혜택을 주는 공약을 내놨다. 상대진영에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나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2018~2020년 3년간 쏟아 부은 저출산 예산만 무려 96조가 넘는다. 그 돈 잘 썼으면 이렇게까지 안됐다”면서 “주거 불안정은 비혼과 저출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통계청이 지난 8월24일 발표한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국 출생아 수는 12만7138명으로 1년 전보다 8116명(-6.0%) 감소했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1년 이후 상반기 기준 역대 최저치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인 2.32명보다 1.51명 낮은 수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한국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해 오는 2040년에는 대전시 전체 규모를 넘는 인구(165만명)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사회 인구구조 변화로 생산연령인구 감소, 축소사회 도래, 초고령사회 진입 등 3대 위험 요인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매년 저출산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 규모가 늘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8월 분석 평가 보고서를 내 “자문위원회로 정책 결정 권한이 없어 정책에 대한 책임이 모호하다”며 “보건복지부 및 기획재정부 등 행정부처가 중심이 돼 정책을 추진하고 정책에 대한 책무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서형수 전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역시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보건복지부(저출산고령사회위)와 기획재정부(인구정책 TF)로 이원화된 정책추진 거버넌스를 재고해야 한다”면서 “아동, 여성, 노인 등 대상자 중심의 복지정책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인구정책 추진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도 저출산고령사회위가 실질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4차 저출산 기본계획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내걸었다. 구체적 대안은 새로운 것이 없었다. 평소에 해오던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수준에 그쳤다”면서 “성평등을 기본 모토로 내걸어놓고 실현 방안은 실종됐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에 일부 동의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예산에 착시효과가 있다. 스타트업, 게임산업 육성 등이 간접예산으로 잡혀 저출산 예산으로 포장되는 것”이라며 “직접 지원 예산만 따지면 국내 GDP 1.43%로 독일, 프랑스 저출산 예산이 GDP 4% 이상을 지출하는 것에 비해 한참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고령사회위는 예산편성권이라던지 법 제정권도 없다”면서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또 다른 기구로 재편성되던지 보건복지부 밑 사회보장위원회를 크게 키워서 저출산을 위한 사회정책전반을 전담하는 방식 등으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