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150여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경험하고 본 이들뿐 아니라 사진,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이들까지 우울감,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사상자는 총 328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총 156명이다. 내국인 130명, 외국인 26명이다. 68명에 대해 발인이 완료됐다.
성별로는 남성 55명, 여성 101명이다. 연령별로는 10대 12명, 20대 104명, 30대 31명, 40대 8명, 50대 1명이다. 부상자는 172명이다. 중상 33명, 경상 139명이다. 부상자 가운데 37명이 입원했고 135명은 귀가했다.
마음이 힘들어 도움 요청하는 이들은 늘고 있다. 정부는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 내에 100명 규모의 ‘이태원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렸다. 1577-0199로 전화하면 정신건강 위기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은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어제 그제 사이 대국민 상담 전화가 40% 증가했다”고 말했다.
참사 발생 초기 SNS를 통해 사진과 영상은 일파만파 퍼졌다. 사고 당시 장면부터 대규모 심폐소생술(CPR)이 벌어지는 모습, 시신이 누워있는 모습까지 여과없이 유포됐다. 워낙 공개된 장소에서 일어난 데다 목격자도 많았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모(30·여)씨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생생히 담긴 영상을 카카오톡으로 실시간으로 접했다.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이전 다른 대형 사고는 현실성이 없어서 충격이 덜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이 점이 이태원 참사의 가장 끔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모(34)씨는 “뭣도 모르고 링크를 클릭했다가 끔찍한 영상을 본 뒤부터 계속 속이 울렁거린다”면서 “잠도 잘 오지 않고 영상 속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머리 속을 떠다닌다”고 토로했다.
방송사들은 사고 영상을 제보 받아 사용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반복 노출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전날까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자극적 현장을 노출한 방송 뉴스 보도와 사진, 영상에 대한 민원이 17건 접수됐다. KBS·MBC·SBS 지상파 3사와 보도 전문 채널 YTN는 지난달 31일 이태원 참사를 보도할 때 가급적 사고 현장 영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잇따라 밝혔다.
전문가는 사고 영상이나 사진을 반복해 보는 것은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것과 비슷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노재성 아주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뉴스나 영상을 계속 찾아보는 것은 자극에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찾아보지 않게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지나도 정신적 충격이 계속 지속되는 것 같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유재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에 노출되면 위험한 상황에 대한 과도한 놀람 반응, 사람이 많거나 밀집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 반복되는 사고 관련 악몽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서 “우울, 불안, 수면장애, 멍함, 집중 어려움, 비현실감, 기억장애 등 해리 증상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스트레스에서 노출된 상태에서 조절력을 회복하기 위해 복식 호흡법, 나비 포옹법, 착지법 등 안정화 기법을 사용할 것을 권했다. 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주변과 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유 교수는 “사고로 슬프고 허망한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를 주변인과 나누며 서로를 지지하고 감정을 타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애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며 “나와 주변을 보듬고 서로 지지하면서 마음의 상처도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