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졌다. 수백 명이 스러져간 참사 때마다 국가 대응은 적절했을까. 쿠키뉴스는 4회에 걸쳐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대응을 짚어보고 과거 참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편집자 주]
“경인(경찰) 추가 비발(출동) 요청할 수 있도록 건물 도로변하고 후면 진입이 곤란한 상황이에요. 속히 추가 비발 독촉”, “15명 정도 심폐소생술(CPR) 실시 중인데 인원 모자라요 대원들 빨리”, “20대 여성 병원 선정 좀 해주세요. 다 안 된다고 하네요”, “구급차도 빨리빨리 보내고 회전 좀 시켜주세요.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날의 급박했던 상황은 119 소방 무전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장은 통제되지 않아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CPR 인력은 부족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는 병원조차 배정받지 못했다. 혼란 속 소방과 경찰, 의료진이 사투를 벌일 동안 국가는 어디에 있었을까. 재난 관련 보고·대응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출동 요청만 19번, 윗선은 어디에
8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이태원 참사 당시 소방 무전 녹취록에 따르면 소방은 관제실 등에 경찰을 출동시켜 달라고 19번 요청했다. 독촉해달라는 내용은 6번 언급했다. 경찰 출동 요청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20분부터 11시55분까지 1시간35분 동안 이어진다. 소방의 구조상황보고서에도 오후 10시18분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한 뒤 배치 여부를 여러 차례 확인한 정황이 적혔다.
늦은 보고와 지시 체계는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는 ‘중앙대책안전본(중대본)부장은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에게 행정 및 재정상의 조치, 소속 직원 파견, 그 밖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참사 발생 시 지시 체계가 탑다운(하향식)으로 이뤄진다고 내용이다. 위기 경보 발령과 인명구조는 우선 조치한 후 통보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렸으나 경직된 보고 체계를 깨기는 역부족이다. 또한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시·군·구청장 등에 한정된다.
골든타임 지나 만들어진 콘트롤타워
현장을 통제할 콘트롤타워의 공백도 컸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29일 오후 10시59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청이 같은 날 오후 10시26분과 오후 10시29분 서울시와 용산구청 상황실에 인명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셈이다. 박 구청장을 재난안전대책본부 및 통합지원본부장으로 세운 콘트롤타워는 30일 오전 0시20분에서야 가동됐다. 이태원 참사 관련 중대본부가 설치된 시각은 30일 오전 2시30분이었다. 인명구조 골든타임은 한참 지난 후다. 당시 현장에서는 사망 판정을 받은 희생자들을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으로 이송하고 있었다. 국가 안전 책임자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오전 11시1분 사고 발생 사실을 보고 받았다. 오후 11시26분 현장을 점검하고 즉각 대응하라는 첫 지시를 내렸다. 이후 오후 11시54분 인근 응급 병상을 확보하라는 두 번째 지시를 내렸으나 현장은 병상을 구하지 못해 혼란했다.
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각 지역 병상 현황을 알지 못해 가장 가까운 순천향병원으로 환자가 쏠렸다. 구급 상황이었지만 병원이 포화상태가 된 탓에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이동해야 했다. 경찰과 소방, 해경 등이 재난 대응 업무에 활용하기 위해 전용으로 사용하는 재난안전통신망은 무용지물이었다. 최초 통화 시간은 29일 오후 11시41분이다. 119 첫 신고 후 1시간26분 뒤다. 활용 시간도 저조했다. 29일부터 30일까지의 통화량은 서울재난상황실 183초, 용산재난상황실 10초, 중앙재난안전상황실 2초다. 재난 관련 기관이 단일 통신망으로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골든타임을 확보하자는 취지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질타가 나온다.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에 들어간 예산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삼풍·대구지하철·세월호는 어땠나
재난 관련 보고·대응 체계의 문제점은 지난 참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 소방과 경찰,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인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서로의 관할권을 주장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구조 및 수습에 차질이 빚어졌다. 희생자의 시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쓰레기매립장에서 추가 수습되는 비극도 있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체계적이지 못한 대응 사고 대응 시스템과 보고 체계가 문제로 지적됐다. 화재가 났던 열차 기관사는 초기 진화에 실패하자 중앙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대피했다. 반대편 선로에서 오던 열차가 그대로 진입하며 피해가 커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미흡한 초동 조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총체적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논란이 됐다. 제대로 된 구조 조치를 하지 못한 해경은 해체됐다. 위험한 상황에 빠졌던 이들은 자력으로 탈출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민들은 원치 않게 영웅이 됐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10만명의 인원이 몰린 상황에서 이태원 파출소 소속 수십여명의 경찰관이 모든 것을 조치하는 것은 한계였을 것이다. 기동대 재배치 등은 파출소에서 내릴 수 없는 명령”이라며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콘트롤타워도 없었다. 재난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 교수는 “평상시에도 상호 간 훈련·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1년에 1~2번 형식적인 대비에 그친다”면서 “초기에 보고 및 판단이 빠르게 이뤄져야 신속하게 구조활동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