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칼럼-신복룡 ]
우리의 입에 그리 자주 오르내리는 신약성경의 ‘간음한 여인’(요한복음 8 : 1~11)의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는 먼저 이렇게 인용한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성경에는 그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은 자리에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께 말했다.
“선생님, 이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인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예수께서 일어나시어 여자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인이여, 그대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소? 그대를 정죄한 무리가 없소?”
여인이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나도 그대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마시오” 하시니라.
성경의 이 대목을 읽을 때 우리는 이 대목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지울 수 없다. 먼저 바리사이파 사람과 율법학자들이,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즉답을 못 하고 몸을 굽혀 바닥에 뭐라고 쓴 다음 일어서서 “여러분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시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대목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시 몸을 굽혀 바닥에 뭐라고 썼다.
내가 이 성경에서 관심(의문)을 갖는 중요한 부분은 예수께서 두 번씩이나 몸을 구부리며 바닥에 쓴 내용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나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나” 라고 쓴 것은 아닌지….
또 하나 이 성경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났다”는 점이다. 문예부흥기의 대표적 화가인 로렌초 로토(1480-1556)의 성화 “간음한 여인”이라는 그림을 보면 그 자리에는 모두 열여섯 명이 서 있는데 그 가운데 여성은 간음한 그 여인 하나뿐이다. 자,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늙은이들이 먼저 떠났을까?”
인생은 산만큼 죄를 짓는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마음에 찔리는 죄책감이 커서 먼저 떠났을 것이라는 점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 나이 먹은 것을 자랑할 것도 아니고 행세할 일도 아니다. 인생에서 연륜과 그가 지은 죄의 양은 정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1917)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악마는 노인이다.”
* 추기 : 성경에서 흔히 인용되는 이 이야기는 사실 헬라어 원전에 없다. 중세에 어느 필경사나 성서학자가 끼워 넣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으로서의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NEV)
simon@konkuk.ac.kr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충북 괴산 출생으로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