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 기계공학과 재학생 김용(여진구)은 조용히 위태롭다. 친구 따라 택한 전공은 적성에 영 맞지 않는다. 졸업이 코앞이지만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단조롭던 용의 일상은 신입생 서한솔(김혜윤)을 만나며 생기를 얻는다. 한솔에게 첫눈에 반한 용. 어색한 관계를 진전시켜 연인이 되고자 한다. 용의 연애코치는 같은 학교 사회학과를 다니는 무늬(조이현)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무전기로만 고민을 나눈다. 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23년이라는 시간의 벽이다.
영화 ‘동감’(감독 서은영)은 로맨스라는 외피를 쓴 청춘 성장 드라마다. 배경은 세기말 한국대학교.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방황하던 용은 같은 학과 신입생 한솔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모태솔로 용에게 연애는 취직만큼이나 어렵다. 이런 용을 무늬가 돕는다. 한국대학교 21학번인 무늬는 부모님의 낡은 무전기를 작동시켰다가 우연히 용과 연결됐다. 7년 지기 친구를 짝사랑 중인 무늬에게 용의 첫사랑은 남 일 같지 않다. 무늬는 말한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무늬의 조언에 용기를 낸 용은 한솔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둘은 연인이 된다.
순탄하던 연애는 용이 ‘인생 스포’를 당하며 위기에 놓인다. 자신의 미래를 알아버린 용은 자꾸만 피어나는 의심과 질투로 괴롭다. 그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연애뿐만이 아니다. 마음 한구석에 끈덕지게 들러붙은 꿈이 용을 위축시킨다. 무늬도 마음이 쓰리기는 마찬가지다. 용과 자신을 동일시해서다.
용은 방황하는 청춘의 초상이다. 그에게 사랑은 그저 한때의 열병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것도 주도하지 못하는 삶에서 그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다. 한솔을 지키려는 용의 몸부림은 이번 생이 망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발버둥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처는 언젠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용 역시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다. 영화 에필로그에 등장한 중년의 용이 이를 증명한다. 작품은 용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또 한 번 용기를 내어 자신의 초라함을 디뎠으리라고 짐작하게 한다. 이런 용의 모습은 시공을 가로질러 2022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유효한 위로를 준다. 우리는 성공이 아닌 실패를 통해서도 성장한다는 위로다.
반면 21세기 청년 무늬의 이야기는 밋밋하다. 꿈과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영지(나인우)와의 로맨스에만 무게가 실려서다. 무늬가 공감을 얻지 못하니 그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도 설득력이 약하다. “하이루 방가방가” “무지개 반사” 등 세기말 유행어와 “부캐” “오히려 좋아” 같은 신조어는 다소 낯뜨겁게 들린다. 16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