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당했던 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래요. 우리는 보호자가 아닌 살아갈 집이 필요한 거예요. 미성년자는 법적보호자 아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학대행위자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하나요.”
18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청소년 쉼터 30주년 맞이 국회 토론회에서는 ‘가정 밖(가출 혹은 탈가정) 청소년 보호체계,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쉼터 사용자와 현장종사자의 사례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보고,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논의가 이뤄졌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위기청소년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쉼터 입소 청소년 및 비행 내지는 범죄연루 등 위기청소년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부모님(보호자)으로부터 심하게 맞거나 신체적 위협을 느낀적 있다’고 답한 청소년은 70.7%, ‘부모님(보호자)이 욕을 하거나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라고 느낀 응답자도 70.1%에 이르렀다.
청소년 쉼터는 가출 청소년에게 잠시 쉴 공간을 마련해주고 심리 또는 정신 상담, 치료를 제공하는 보호 시설이다. 하지만 쉼터라는 이름처럼 결국 가출 청소년의 ‘가정 복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거주 환경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가정폭력은 청소년의 가출 주요 원인이다. 이른바 ‘생존형 가출’인 만큼 가정 복귀가 어렵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청소년복지 지원법에 근거한 청소년 쉼터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유용한 대안이면서도, 가정 복귀를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점은 청소년 보호에 있어 제한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출 청소년이 쉼터 입소를 희망할 경우 보호자에게 연락하게 되며, 폭력 등 피해자라도 경찰 신고, 피해 사실 증명 등 공적 처리 절차를 밟아야 인정된다. 청소년에 대한 결정권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청소년 쉼터에 거주했던 김희림씨는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오랫동안 가정 폭력을 버티다 도살장 같은 집을 나와 청소년 쉼터에 입소했다. 막상 와보니 또 다른 가해시설이나 다름없었다. 방마다 CCTV를 설치한 곳도 있었고, 샤워 시간 기록, 몇 번했는지 까지 기록하게 했다. 자해 위험 때문이라 했지만 그들은 그저 청소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쉼터는 ‘우리가 실질적 보호자로 해줄 수 없다’, ‘너희는 미성년자니 보호자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도 말만 아동보호지 실질적 보호자가 될 수 없고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며 “청소년도 인권이 있다. 그저 인권을 보장 받고, 머물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집이 필요한 것뿐이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 미성년자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생활할 수 있는 주거지원과 생필품·교통비 정도의 기본적 지원을 달라”고 호소했다.
강선주 부천시일시청소년쉼터 소장도 “예전에 학대를 받아 쉼터를 찾아온 한 청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법적 보호자가 반대했고, 학대를 입증하려면 수많은 서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경찰과 지자체에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그들은 입증을 할 수 없으니 우선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학대를 받으면 입소 허가를 내준다더라. 그러면 그 아이는 나가살기 위해 학대를 또 받아야만 하는건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쉼터에 입소해도 살기 어렵다. 쉼터에 19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4개의 방을 나눠서 쓰고 있는 현실”이라며 “성별에 따라 방을 나누고 아이들의 특성이 존중되며 살아가기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아이들은 쉼터에서 살기도 쉽지 않고, 나가서 살기도 어렵다. 현실적인 자립 지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홈리스(homeless)’로 분류…거주 및 자립 중심 지원
송지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변호사는 “현재 한국은 탈가정 청소년의 유일한 주거 대안을 청소년 쉼터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탈가정 청소년들의 쉼터 이용률이 높지 않아 대다수 탈가정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위기를 경험한다. 또 쉼터를 이용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가정으로 복귀됐다가 결국 거리생활을 하게 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홈리스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청소년 개인이 아닌 집이 없는 상태가 위기로서 다뤄져야 한다. 가정 복귀 가능성을 살피고, 불가능할 경우 즉각적인 주거 제공 방식으로 지원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청소년을 미성년자가 아닌 하나의 시민으로서 주거권을 보장해야 하며 그들이 지속가능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홈리스 청소년’은 해외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해외에서 추진되는 ‘가출 및 홈리스 청소년법’은 집을 나오거나 집이 없는 청소년을 포괄한다. 미국은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18세 미만인 자 또는 16~22세에 해당하는 자로 규정하고 일시 및 단기보호 거친 이후 자립지원 제도로 전환해 이들을 돕는다. 사례관리자가 청소년과 함께 개인별 자립계획을 세우고 퇴소 이후 거리생활을 하지 않도록 주거 지원에 집중한다.
영국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홈리스 청소년의 주거불안정, 주거위기, 홈리스 상태에 개입하고 이에 대해 맞춤형 대책을 지원한다. 또한 가정복귀가 불가능한 청소년이라 판단되면 곧바로 지방정부 연계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병모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정책이사는 “최근 쉼터 퇴소 청소년 자립지원수당이 월 30만원으로 확대됐지만 많은 청소년이 권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상자 기준은 청소년쉼터 퇴소일로부터 3년 이내, 만 18세 이후 퇴소하고 퇴소일 기준 과거 3년 동안 2년 이상 보호받은 청소년으로 한정하고 있다. 단기쉼터 이용자는 해당도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청소년복지지원법에는 자립지원이 청소년복지시설의 역할 중 하나로만 규정돼 있을 뿐 하위 법령에서는 구체적 명시가 없다. 보호기간 중 자산형성 지원, 주거지원, 실태조사, 사후관리체계 구축 등 핵심요소는 사실상 공백 상태라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며 “또한 실질적 자립을 위해서는 아동복지법과 청소년복지지원법 사이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