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6일, 금융감독원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빙자하여 강사가 보험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브리핑 영업’이 성행하고 있다”며 주의 등급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자질 미달의 성교육 강사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사가 성희롱 발언을 일삼거나 영업행위를 하는 사례도 포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9년 2월부터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화했다. 법정의무교육이 된 것이다. 2020년 기준 239만5000여개 사업장이 매년 1회 이상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 중이다. 교육자료 배포·게시로 대체할 수 있는 1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더라도 하루 평균 약 768개의 사업장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는 셈이다.
성희롱 예방 교육 수요가 늘면서 강사 인력도 필요해졌다. 문제는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자격증을 받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자격 미달 강사들은 어느 곳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던 걸까.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양성과정에 참여해봤다.
하루만 투자하면 고소득 강사 된다?
지난 9월 중순,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자격증을 발급해준다는 A 업체에 강의 등록 신청을 했다. 홈페이지에는 ‘쉽고 빠르게 고소득 강사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커리큘럼을 홍보했다. 수업료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포함한 4대 법정의무교육 강사 과정을 묶어 38만원이었다.
강의실을 찾은 학생은 모두 9명. 20대 여성부터 40대 남성까지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가 있었지만 수강 계기는 동일했다. ‘당장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어서’다. 모 기업의 인사노무부에서 근무 중인 수강생 B씨와 C씨는 자격증을 딴 후 바로 회사에서 강의해야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소속 직원 D씨는 프리랜서 강사가 목표였다.
수업이 시작됐다. 강사는 “대한민국의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40%가 우리 교육기관에서 배출됐습니다”라며 운을 띄웠다. 이어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관한 사견을 읊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미투가 시작된 이후 신분을 공개한 피해자는 단 두 명뿐”, “해외 일간지인 르몽드와 워싱턴 포스트가 한국 미투의 전개 방식을 크게 비판했다”는 등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발언들이었다.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강제 전역을 당한 고(故) 변희수 하사의 사례를 들며 부적절한 농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전체 교육과정은 총 15시간이다. 이 중 7시간은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채워졌다. 원격 수업 형태가 아니라 기존 강의 영상을 틀어놓는 방식이다. 배속 재생 기능까지 있었다. 결국 실질적인 수강 여부는 수강생의 양심에 달려있다. 대면 강의는 고작 반나절 안에 마무리됐다. 기존 커리큘럼에는 모의 고충심의위원회를 진행하는 롤플레잉과 자격 취득시험이 명시되었지만, 이마저도 축약되거나 생략됐다. 롤플레잉은 각종 실제 사례를 내걸고 수강생별로 성희롱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OX 게임에 불과했다. 자격시험 문제도 ‘모든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등 교육을 수강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득점이 나올만한 난이도로 구성됐다. 시험 방식도 허술했다. ‘시간 문제상 스스로 풀고 채점하라’는 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갔다. 강의가 끝나자 교육센터의 직원이 자격증을 한 아름 들고 왔다. 기자는 수강료 40만원을 내고 하루 만에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자격을 땄다. A 업체에서 진행하는 강의력 테스트까지 통과한다면 실제 출강도 가능하다.

자격증 발급 업체 또는 기관마다 교육 시간과 커리큘럼은 천차만별이다. A 업체와 같은 사설 기관이 아닌 공공 기관에서도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자격증을 발급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대표적이다. 양평원의 경우, 수강생 선발부터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선발 과정은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나뉜다. 일반전형은 3년 이상 유관 분야를 연구한 경력이 있는 학위소지자 및 유관 분야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특별전형은 유관 경험이 없는 지원자들 대상이다. 지원 서류(성인지학습계획서)를 선발한다. 추려진 수강생들은 약 150시간의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해 본격적인 전문 강사가 된다. 강사 자격을 유지하려면 매년 14시간에 달하는 재위촉 보수과정을 받아야 한다.
반면 A 업체를 비롯한 사설업체의 경우, 반나절의 교육 시간만으로 수료증, 혹은 민간 자격증을 발급한다. 별도의 보수과정이 없다. 그러나 해당 A 업체 또한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받은 성희롱 예방 교육 위탁기관이다. 내부적인 강의력 테스트에 합격만 한다면 문제없이 전문 강사가 될 수 있다.
국가에서 공인한 체계적인 강사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전문 강사라는 직함이 특별한 기준점도 없이 남발되고 있다. 제각각인 커리큘럼으로 인해 배출되는 강사들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지만 업계에서는 똑같이 전문 강사로 불리고 있다. 성교육 관련 국가 공인 자격증이 없기에 현직 강사들의 프로필은 대부분 성희롱 예방 교육 과정 수료, 00기관 위촉 강사로만 경력 사항이 나열돼 있다.

역량 편차가 확연한 전문 강사를 가려낼 방법은 있을까.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을 이수해야 하는 기업 관계자들은 난항을 겪고 있다. 강사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은 강사 이력을 확인하는 방법 정도다. ‘학교·공공기관 다수 출강’ 등 경력 사항에 모호한 표현이 기재돼도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양평원 전문 강사라 할지라도 매년 재위촉 과정을 밟지 않으면 그 자격이 상실된다. 이미 상실된 자격을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한 검증을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강사 데이터베이스인 강사뱅크를 통해 한 번 더 위촉 여부를 확인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양평원 관계자는 “해촉된 강사들을 대상으로 추적 관찰하듯이 모니터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제보가 들어오면 해당 강사에게 직접 정정 요청을 하거나 홈페이지에 위촉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배너를 띄우는 방식 등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에서는 성희롱 예방 교육에 드는 비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매년 일정 횟수 이상 실시해야 하므로 강사 초빙 비용에도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한 중견 제조업체의 노무 관계자 E씨(55)는 “고용노동부에서 300인 미만 사업장에는 무료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섭외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자체적으로 지출해야 한다”며 “비용 문제 때문에라도 낮은 섭외비를 요구하는 강사를 초빙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위탁 기간 감사에도 구멍…제도 개선은 요원
다수의 기업은 정부의 인정을 받은 위탁 기관을 통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한다. 위탁기관이 되기 위해 각 기관은 증명서류를 증빙해 고용노동부에 직접 신청한다. 증명 서류로는 예방 교육 강사 보유 현황과 사용 교재 등이 있다. 이후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에 의거한 고용노동부의 내부 승인 절차를 통과하면 된다. 위탁 기관 중 대다수는 민간자격증 보유 강사들로 채워 현장에 내보내는 식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매년 노동부에서 사후관리 차원으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지난 4월 기준 고용부 지정 성희롱 예방 교육 위탁 기관은 116곳이다. 2018년에는 92곳이었다. 약 4년 만에 24곳이 증가한 셈이다. 감사 후 지정 취소되는 사례는 있었을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위탁 기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상했을 때, 6~12개월의 유예기간을 주어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한다”며 “보완이 되지 않으면 자격을 박탈하는 취소보다는 자진해서 자격을 반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성희롱 예방 교육의 제도적 개선은 요원하다. 2018년 8월 신보라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민간 사업장 성희롱 예방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2019년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그 이후로는 관련 문제에 대한 개선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