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70년 우리나라 인구는 3800만명까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출생과 고령화 현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새로운 접근의 인구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급감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저출생·인구절벽 대응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 여성, 인구전략 등 각 분야 정책 전문가들은 인구절벽 현상의 가속화를 멈추기 위해서는 인구 전반의 ‘삶의 질’과 ‘성평등’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 3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출산할 것으로 추산되는 출생아 수로, 지난해에는 0.81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가 저출생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부터 지출한 예산은 총 280조로 추계된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뚜렷한 상황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저출생은 선진국이 일반적으로 겪는 당연한 사회현상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OECD회원국 가운데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북구 유럽에서도 1990년 이후 출생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출생율 하락 속도는 전 세계에서 독보적이다. 앞서 2000년 총 출생아 수는 약 60만명대였는데, 2001년 50만명대로 10만여명이 줄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7년 30만명대, 2020년 20만명대가 됐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부터 0명대에 진입했다. OECD는 앞서 2019년 한국의 저출산 현상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출생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인구학적 요인이 꼽힌다. 우선, 출산을 하는 여성들의 연령이 높아졌다. 지난 10년 동안 평균 출산 연령은 31.4세에서 33.4세로 높아졌다. 평균 초산 연령은 30.3세에서 32.6세로 상승했다. 혼인이 감소하고, 혼인을 하더라도 그 시기가 늦춰졌다. 2000년 혼인 건수는 약 33만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9만건으로 집계됐다. 초혼 연령은 2011년 남성 31.9세, 여성 29.1세였지만 지난해에는 남성 33.4세, 여성 31.1세로 높아졌다.
사회경제적 원인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2010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경제적 기반의 불안정성이 세계적으로 확산했다. 고용 조건은 계속해서 열악해졌고, 주택 가격과 주거비용도 급등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현실과 높은 양육 비용도 가세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 됐다.
사회 전반의 여건을 다각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아동수당, 영유아 보육교육 서비스, 육아휴직 지원 등의 가족지원 정책은 출생율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정책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생률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까지 추진한 가족지원정책으로는 한계가 있고,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는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지원 정책이 출생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경제적 배경이 출생율에 더 큰 영향을 준다”며 “경제, 노동시장, 주거비용 등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초저출생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요인이다”고 강조했다.
출생율이 하락세를 보이다가 반등한 해외 국가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양성평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모두 사회보장제도 내 포용해 혜택을 부여했다. 이에 1994년 1.66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2010년 2.02명까지 상승했다. 프랑스는 가족수당, 아동·가족 관련 공공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GDP의 4%대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정책의 효과를 거뒀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저출생, 초고령화 국가로 들어섰다. 일본은 1995년 이른바 ‘엔젤플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자녀·육아 비전’ 등의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을 폈다. 그 결과 2005년 1.26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2015년에 1.45명으로 소폭 상승했다. 특히 일본은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에서 출생률이 2015년 1.66명에서 2021년 1.74명으로 늘었는데, 이는 일·가정 양립 지원에 집중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김상미 국회예산정책처 인구전략분석과 경제분석관은 “현재 태어나고 있는 출생아가 출산 연령대가 되는 20~30년 후에는 출생아 수가 지금보다 더욱 급감할 것”이라며 “혼인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완화하려면 적극적인 성평등적 정책과 일·가정 양립 문화가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여성들이 정주하지 못한 도시가 소멸 위기에 놓인다는 경고도 나왔다. 일례로 당진시는 소멸 위험분류 5단계 중 4단계에 해당하는 상황인데, 당진시의 성별 평균임금은 남성이 341만원, 여성이 184만원이다. 올해 3월 기준 위험분류 4~5단계에 해당하는 지역은 전국 시군구의 49.6%, 전국 읍면동의 51.7%에 달한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 여성의 경우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도저히 적합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대도시, 수도권으로 이동한다”며 “반면 청년 남성은 오히려 대도시, 수도권, 서울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지방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여성과 기혼 여성 모두를 대상으로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차별이 없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