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특례시가 사상 초유의 예산 미편성 상태로 새해를 맞을 위기에 처했다. 시의회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 등원거부로 고양시 내년 예산안이 아예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시의회, 본회의 성과 없이 종료… 임시회 개최도 불투명
고양시의회는 내년도 시 예산을 심의‧확정하는 제268회 2차 정례회 법정기한 마지막 날인 15일을 넘기고 말았다. 지난달 25일부터 21일간 이어진 이번 정례회에서 본회의를 한 번도 개최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17명 전원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아서다.
지방조례 상 연간 총 본회의 일수가 45일로 정해져 있어 내년도 예산을 심의할 본회의를 다시 열 수는 없다. 다만 임시회에서 예산을 심의할 수는 있다. 조례 상 임시회 회기일수가 11일 남았고, 본회의 의결로 기간을 더 늘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동환 시장의 요청으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해 16일 열기로 했던 임시회도 정상적으로 시작되지 못했다. 민주당이 전날(15일) 의원총회를 열어 김영식 의장의 직권남용을 문제 삼아 임시회에도 불참하기로 한 것이다.
김미수 민주당 대표의원은 “원칙적으로 임시회 일정은 운영위원회에서 정해야 한다"면서 "최소한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를 했어야 하는데 의장이 직권으로 공지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번 고양시의회의 파행은 이 시장의 해외출장을 비판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집회에서 비롯됐다. 집회장에 나온 이상동 비서실장의 언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문제해결 과정에서 김 의장을 향한 불만과 불신까지 더해져 지금의 파행사태로까지 번졌다.
김 대표의원은 “예산심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책임은 비서실장만 바라보고 일하는 시장, 의회와 집행부 사이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의장이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산심의 정말 하고 싶다. 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 시의회 파행에 뿔난 여당, 의장실 항의방문… 민생은?
야당 발 의회파행 사태가 장기화되자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는 양상이다. 급기야 같은 당 출신인 김 의장을 향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고양시의회는 예고대로 16일 임시회를 시작했다. 하지만 회의장에는 여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켰다. 김 의장 또한 집행부 및 야당과의 조율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여당 의원들은 회의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장실로 가 항의했다.
이래저래 2차 정례회 기간에 이뤄졌어야 할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공무원들은 당장 내년도 사업의 차질을 줄이기 위한 준예산 편성에 들어갔다.
준예산은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내년도 예산안이 편성되지 못했을 경우 행정집행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올해 예산에 준해 임시로 짠 예산을 말한다. 당연히 예산담당 공무원은 물론 사업추진 공무원들의 업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준예산 편성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준예산으로는 집행할 수 없는 경비들이 많다. 특히 제설이나 청소, 응급복구, 불법행위 단속 등 위탁운영되고 있는 사업들이다.
지역화폐인 ‘고양페이’ 할인을 위한 지원이나 청년기본소득, 학교 무상급식 등을 위한 예산도 집행하기 힘들어진다. 경기도 생활체육대축전 등 민간행사 보조는 물론 교육기관 보조도 중단된다. 이 시장이 준비한 조직개편과 신규사업 추진 또한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이와 관련 고양시는 지난 13일 “2023년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민생사업들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 더구나 올해 추경예산마저 처리하지 못하면 소외계층이나 노인복지 분야 등의 지원이 끊겨 연말연시 민생대책도 무위로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서 시의회 여당은 야당의 회의장 복귀를 거듭 당부하고 있다. 이철조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코로나19로 격리 중임에도 “지금처럼 엄중한 시기에 민생안정을 위해서라도 야당이 본회의장으로 돌아와 예산심의에 참여해주길 간곡히 바란다”고 밝혔다.
고양=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