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의 윤곽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됐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조직 의지를 표명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위원회 구성에 돌입하기 위한 사전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산업계 및 관련 기관들은 추진력 있는 구심점이 없는 상황이며 ‘갈 길이 멀다’고 내다봤다.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핵심적인 국정과제로 약속했던 조직이다. 윤 대통령은 당초 취임하면서 바이오헬스 분야를 국가의 핵심 산업으로 천명했다. 국민 건강권을 보호·향상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까지 꾀하는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당선 전 대선에서 내걸었던 공약에는 국무총리 직속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설치해 제약바이오산업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하도록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산업계는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제약바이오산업은 의약품 수출입, 신약 및 신기술에 대한 특허, 임상시험 등의 주제가 얽혀있다. 기업들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제정부 등의 부처와 각각의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산발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아울러 신기술 개발 및 도입을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에 대한 고충도 크다.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가 설치되면, 산업계는 정부 및 학계 전문가들과 직접 소통하며 정책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후 현재까지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안은 구체화하지 못했다. 위원회의 목적과 권한 등 기본적인 개요를 확립하고, 위원 선발 및 위촉까지 지난한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진전이 없다. 19일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바이오헬스는 기술간 융복합이 활발한 분야로 부처간 협업이 중요하다”며 “바이오헬스 규제 개선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정은영 보건산업정책국장도 “기술적 융합 분야에서 협업이 중요하다”며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추진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설명에 그쳤다.
산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를 확신하면서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컨트롤타워로서 위원회 설치는 이미 기정사실화됐다고 본다”면서도 “정부에서 의지를 계속 보여주고 있지만, 실행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위원회의 목표는 무엇이고, 위원회가 결정하고 설계할 정책과 방침들은 어떤 것이며, 이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고 집행할지 명확히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고민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 입김을 내는지에 따라 위원회의 성격이 매우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령 학계 전문가들의 비중이 크다면 기초과학 연구 발전에 방점이 찍힐 것이다”라며 “산업계에서도 누가 위촉되는지에 따라 부가가치가 큰 항암제에 중점을 둘지, 신기술과 디지털 패러다임에 중점을 둘지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결 과제인 법률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관계자는 “제약, 바이오, 헬스 산업과 관련된 법률을 정비해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생명공학육성법,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산업기술혁신 촉진법, 첨단의료복합단지 육성에 관한 특별법, 첨단재생바이오약법 등 다수의 법률이 각기 다른 부처 소관으로 산재하고 있어, 모든 관계부처가 모여 주기적으로 회의하고 공동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신약을 개발하고 기술을 혁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는 바로 개발과 혁신의 주체인 기업이다”라며 “산업계가 법률 정비와 위원회 구성을 위한 물밑작업에 소극적으로 남아있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컨트롤타워 마련을 위해 ‘협심하기로 했다’거나 ‘협업을 결의했다’는 등의 선언만 하고, 모여서 사진만 찍기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