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담배만 피우지 않으면 한 남자로서 괜찮은 사람인데….”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참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그때를 회상한다. 결국 나는 그 녀석 때문에 담배를 끊었다. 평생에 2만 갑을 태웠다. 그게 가능하냐구요? 1년에 500갑씩 40년을 태웠으니 그 계산이 정확하다.
10cm×20개피×20,000갑이면 길이로 40km이다. 강의 한 시간에 두 대 태웠다. 지금은 자기 연구실에서도 금연이란다. 지금 세상 같았으면 파면당하기 딱 좋았을 게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저 교수는 아마 건국대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끊을 사람이야.”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멋있어 보여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제자를 많이 만났다. 내 미욱한 짓이 참으로 많은 죄를 지었다. 그 녀석들은 세월이 지나서도 내 안부를 물을 때면 이렇게 묻는단다.
“요즘도 강의 중에 담배 태우시냐?”
그런 내가 담배를 끊었을 때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어 끊었다고 들었다. 담배를 끊고 금단 현상이 심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링거를 꽂고 있었다. 담배를 끊으려고 별짓 다 해 보았다. 하루에 열 번도 더 끊었다.
약도 먹어 보고, 패치를 붙여 보고, 헛담배를 피워 보고, 캔디를 물어보고, 기도원에도 들어가 보고……. 그러나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가장 효과를 본 것은 담배 생각이 날 때 냉수를 한 컵 드려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끊으려는 의지가 있은 다음의 일이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담배도 안 태우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일갈했지만, 담배에는 분명히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담배를 끊는 즐거움도 있다. 한국인은 담배란 끊을 수 없는 것이란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담배를 끊는 방법은 간단하다. 안 피우면 된다. 그런데 그게 어지간히 독종이어서는 안 된다. 요즘 세상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안 피우는 사람보다 더 독종이라고 하더만….
세월이 지나 그때 여학생이 중년이 되어 홈 커밍 데이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들으려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선생님의 담배 연기에 목이 아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simon@konkuk.ac.kr
◇ 신복룡
1942년 충북 괴산 출생. 건국대 정외과와 같은 대학원 수료(정치학 박사). 건대 정외과 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 및 대학원장, 미국 조지타운대학 객원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1999~2000), 국가보훈처 4⋅19혁명 서훈심사위원(2010, 2019),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및 위원장(2009~2021) 역임.
저서로 '한국분단사연구'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등 다수, 역서로 '정치권력론' '한말외국인의 기록 전 11책' '군주론'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