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삶을 위하여 진심으로 아파하고 고민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은 진정 꿈인가.
하월곡동 88번지 이곳저곳에서 재개발 이야기가 한참이다. ‘신월곡 제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재개발사업이름 그대로 풀어보면 아름답지 않은 도시환경을 재정비하는 사업이고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나 모두가 아름다워져야 한다.
‘모두’를 위한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을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재개발차익으로 인해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되는 집 소유자들은 눈에 보이는 금덩어리에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재개발은 늪이다.
작은 가게를 하면서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영세 상인들은 쥐꼬리만 한 영업보상금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고민의 늪은 끝이 없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함으로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한다고 호소하는 동네 상인분들이 많다.
아직은 아이도 키워야 하고, 수중에 가진 돈이 많지 않으니 어디 가서 뭘 해야 목숨줄을 이어 붙일 수 있을까,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계속되는 이야기들 제대로 된 영업보상금과 가기 이전을 위한 상담이나 공익 부조 활동은 불가능한 것인지,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고 그 답이 듣고 싶다.
이사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임대아파트 입주권도 주거 이전비도 해당이 없다고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하시면서 김씨 할머님은 매일 매일이 울음으로 살고 계시다.
14년 정도를 거주해야 임대아파트 입주 자격과 주거 이전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데 할머님은 안타깝게도 해당이 안 된다. 이렇게 약간의 기간이 모자라는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과연 없는 걸까.
자기 돈으로 월세를 내고 물건을 사서 그 물건을 팔고 그렇게 유형의 공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렇게 어려울 진데,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일터와 사업자등록이 없는 무등록사업자들에게 영업보상이란꿈 같은 이야기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 머리 미용을 하러 출퇴근 하는 미용 이모들은 보이지 않는 노동행위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주는 거냐고.
보이지는 않지만 미아리텍사스 성매매 집창촌이 일터였고 직장이었는데아무런 대책 없이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메아리 없는 외침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고 십수 년째 얼굴을 보고 있는 미용 이모가 이야기한다. 참 허무하고 별로인 세상을 내가 살고 있다고…하월곡동 88번지에서 폐지 거둬들이어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들이 몇 분 있다.
폐지 1kg의 가격은 이제 40원으로 떨어졌다.청년의 몸무게인 70kg 모아서 간다고 해도 수중에 주어지는 돈은 2800원이다.이런저런 가게들이 많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단층 지역이어서 폐지가 많고, 공병도 많고헌 옷가지 등등 수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사 후 남겨지는 이런저런 물건들도 많다. 20년 넘게 폐지를 수거해서 생활하고 있는 윤씨 할머님은 추운 겨울, 더운 여름 일 년 내내 이른 아침부터 해지는 시간까지 손수레를 끌고 온 동네를 다니신다.부지런하시고 항상 웃는 할머님의 얼굴에 재개발 이야기는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조용히 갑자기 죽어야 하는데 그 또한 내 맘대로 할 수 없으니 정말 불행한 인생이라고…원래 윤씨 할머님은 감사와 웃음의 전도사였다.
오랫동안 폐지 손수레를 끌었기에 동네에 아는 사람도 많았고,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니까할머님 지날 때를 기다려 모아 놓았던 물건이나 폐지를 주는 동네 사람들이 꽤 있다.
그렇게 누군가 도와줄 때면 환한 웃음으로 ‘감사합니다’ 를 외치셨던 할머님. 재개발의 늪은 할머님에게서 환한 웃음과 감사를 빼앗아 가버렸다. 이제 할머님께 남은 삶의 나날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날들이 윤씨 할머님께늪이나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고 축복이었으면 좋겠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이 회자되어 법령 제정까지 이야기된 적이 있었지만어느 국회의원 사무실 서랍 안 먼지 구덩이 안에서 잠들고 있다고 한다자기가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을 사랑하면서 품고 , 그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다른 이들과도 함께 이야기하고, 맛깔 난 먹거리를 나누기도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삶이 누리며잘 살아왔는데, 이제 그 공간과 시간이 사라진다.
하월곡동 88번지 재개발로 삶의 근거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도 이어진다.
약사 이미선
1961년 생.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현재 하월곡동 88번지에서 26년 째 '건강한 약국' 약사로 일하고 있다. '하월곡동 88번지'는 소위 '미아리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집창촌이다. 이 약사는 이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약사 이모'로 불린다. 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여 주민 상담, 지역 후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ms644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