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동물실험으로 랄프가 희생되지 않도록 6만6000명이 힘을 모았습니다”
랄프는 단편영화 ‘랄프를 구해줘(Save Ralph)’의 주인공인 실험용 토끼다. 실험실로 출근하는 랄프는 안구와 피부 자극성 시험에 활용되며 한쪽 눈이 실명된다. 랄프의 가족들은 실험실에서 희생됐다. 영화는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 동물실험 반대를 촉구하며 제작했다.
동물시험에 의존하는 화장품, 의약품, 식품 연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물을 소유물로 여겼던 과거와 달리, 동물복지와 동물권 등의 개념이 강조되면서 입법을 통해 동물시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자는 것이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안 통과를 위한 6만6000명 서명 전달식이 개최됐다. HSI와 러쉬코리아가 모은 시민들의 서명이 동물복지국회포럼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전달됐다.
동물대체시험법은 동물을 희생하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적인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각종 인·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효능과 독성을 평가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자료를 도출하는 수단으로 동물시험이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수백만마리의 동물이 실험실에서 희생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실험동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87만마리로 집계된 국내 실험동물 수는 2021년 488만마리에 달했다. 동물의 종별로는 설치류가 353만마리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어류 92만마리, 조류 31만마리, 포유류 7만마리, 토끼 2만마리 등으로 많이 희생됐다.
해외의 상황은 국내와 대조적이다. 동물시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동물에서 얻은 시험결과가 인간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동물시험의 효용성이 낮다는 비판이 크다. 신약의 효능이 동물에서 높게 확인됐다고, 인체에서도 그와 동일한 효능이 나타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최근 동물시험을 신약 허가 필수 조건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이 개정되면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동물시험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도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을 확인해줄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동물시험 대신 시험관 수준의 실험, 컴퓨터 모델링, 바이오프린팅 등으로 얻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공중보건법도 동시에 개정해, 바이오시밀러 승인 신청에 필요한 독성 평가 규정에도 이러한 동물대체시험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법 제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12월 동물대체시험법 개발 및 보급,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신체 모사 모델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시험 기술 개발을 지원해 동물실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이어 지난해 12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약 488만 동물들이 동물시험으로 희생됐다”며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큰 생명과 작은 생명은 따로 없다는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고 있다”며 “토끼의 해를 맞아 예쁜 랄프가 고통당하는 일이 더는 없도록 법안을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보라미 HSI 정책국장은 “한국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과 러쉬코리아가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안 통과를 위한 서명 캠페인을 진행해 2023년 1월 기준으로 총 6만6000여명의 서명이 모아졌으며, 이를 국회 및 정부 측에 전달한다”며 “이번 서명전달식을 통해 동물대체시험법안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고, 결과적으로 법안이 제정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