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장기로 사람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돼지의 췌도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이종 장기이식’이 국내 의료현장에서 시도된다.
이종장기이식은 인공장기나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인간 환자에게 이식하는 기술이다.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실험실에서 무균 상태로 기른 돼지로부터 췌장의 일부인 ‘췌도’를 얻어,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 1상을 승인했다. 임상시험을 수행할 제넨바이오, 가천대학교 길병원, 서울대학교 장기이식연구소 등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간담회를 열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장기 부족 현상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다. 뇌사자의 공여에 의존하기에는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의 수가 훨씬 많다. 특히 췌장은 부족 현상이 극심한 장기로 꼽힌다. 췌장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분비하는 장기로, 췌도는 췌장 내 세포 덩어리다. 췌장은 인체의 가장 심부에 위치했기 때문에 적출이 어렵다. 췌장에서 손상 없이 췌도만 분리하는 작업도 까다롭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는 약 2000만명으로 파악되는데, 이 가운데 췌도 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0.1%만 혜택을 받는다.
돼지 췌도는 가장 가능성 높은 대안이다. 영장류는 멸종위기종이기 때문에 활용하기 어렵고, 사람과 유사해 인수공통감염병 위험성이 크다. 소형 돼지인 ‘미니 돼지’가 학계의 주목을 받는 장기 이식원이다. 미니 돼지는 사람과 혈당, 인슐린 농도, 장기의 크기가 비슷하다. 번식이 쉽고, 유전자 편집기술 적용해 유전자를 변형시키기도 용이하다. 특히 미니 돼지의 췌장은 사람의 췌장과 매우 유사하다. 현재 상용화한 인간재조합인슐린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돼지의 인슐린으로 당뇨병 환자를 치료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면역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난제다. 돼지와 인간은 면역 체계가 상이하다. 돼지의 췌도를 인간에게 이식하면, 인간의 면역체계는 이를 외부에서 침투한 불순물로 인식해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종장기이식 시험에서는 ‘초급성 거부반응’이 문제다. 영장류 이상으로 진화한 종과 그 이하의 종 사이에는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탄수화물이 다르다. 때문에 적절한 조치 없이 돼지의 췌도를 인간에 이식하면, 몇분 내에 장기가 모두 훼손된다. 이번 임상시험은 원숭이를 활용한 전임상시험에서 초급성 거부반응 극복 가능성을 입증했다.
바이러스 감염 예방도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돼지의 유전자(DNA)에는 사람의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돼지내인성레트로바이러스(PERV)가 존재한다. 유전자조작과 전임상시험 등을 통해 PERV감염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이종 장기이식의 선결과제다. 이번 임상시험의 원료 돼지는 서울대학교의 ‘SNU 무균 미니 돼지’다. 성체는 약 80~120kg이며 실험실에서 무균·격리 상태로 관리된다. 그동안 연구진은 쥐, 영장류 대상 시험을 거쳐 PERV 감염이 발생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세계이종장기학회(IXA)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상회하는 수준의 원료 돼지다.
이번 임상시험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IXA의 권고기준을 모두 충족한 첫 이종 장기이식 임상시험이다. 세계이종이식학회와 세계이식학회 윤리위원회의 검토도 완료해, 국내외 학계와 환자들의 기대가 크다. 연구진은 오는 24일부터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하기 위한 설명회를 진행한다. 1형 당뇨병 환자 가운데 ‘저혈당 무감지증’ 증상을 보여 췌도 이식 외에는 기대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저혈당 무감지증은 급격한 혈당 하락을 환자가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적기에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를 위험이 높다.
본격적으로 임상시험이 시작되는 시점은 올해 상반기다. 제넨바이오, 가천대 길병원, 서울대 장기이식연구소의 3자 협약 하에 실시된다. 서울대학교 장기이식연구소에서 무균 돼지를 생산해 췌장을 적출하면, 제넨바이오가 췌장으로부터 순수 췌도를 분리·정제해 세포치료제로 제품화한다. 이 작업을 위한 ‘이종이식제품 제조소’가 가천대 길병원 내 설립됐다. 아울러 길병원은 환자에 췌도를 이식한 후 치료와 추적관찰을 수행한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