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 언니는 왜소증 환자이고, 언니의 키는 채 1m가 되지 않는다. ‘과자 마차’를 끌고 다니며 저녁에 출근하여 밤새도록 간식장사를 하고 있다.
이 곳 집창촌 모든 업소들이 언니의 과자나 담배를 팔아주고 있다. 장사하다가 끼니때가 되면 같이 어울려 밥도 먹고, 졸리면 마차를 세워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하월곡동 88번지가 숙희 언니에게는 직장이고 집이다.
언니의 마차에는 각종 과자와 담배들이 가득하고 언니의 삶도 같이 실려 있다. 하월곡동 88번지에서 마차로 장사한 지 20여 년이 넘는다. 언니는 이곳에서 삶의 절반을 보냈다고 했다. 언니의 개인사는 깊게 물어본 적이 없다.
언니의 물건 창고가 우리 약국 바로 앞이어서 언니의 일상을 자주 보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숙희 언니는 출근한다. 그녀의 출근길은 아주 멀다. 작은 다리와 지팡이로 걷고 있는 그녀에게 세상의 모든 길은 너그럽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 끼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숙희 언니는 지하철을 타기 어렵다고 했다. 버스 승강구의 계단마저도 그녀에게는 높다.
바닥이 낮은 저상버스가 다니기 시작했을 때 참으로 기뻤으나 차도 경계석에서 너무 떨어지게 버스가 정차하면 언니는 온 몸을 던져 뛰어내려야 한다. 그래서 버스 승하차도 어렵다고 한다. 큰돈을 내고 택시를 타야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숙희 언니의 창고는 언니와 많이 닮아 있다. 재개발 예정지의 수십 년 된 언니의 창고는 십 수 년 전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이었으나 한 해 한 해 망가져갔다. 한 가족이 단란하게 살았을 세 개의 방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 하나만 온전할 뿐이다.
그 집은 상하수도가 망가져 물도 쓸 수 없다. 그 공간을 숙희 언니는 과자와 담배창고 그리고 언니가 짬짬이 쉴 수 있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은 냉장고와 작은 선풍기 그리고 1인용 전기장판이 방 한쪽에 깔려 있다. 방의 벽 두 면은 앵글 선반을 만들어 각종 과자를 쌓아 놓았다.
언니는 비닐봉지와 다양한 쇼핑백을 물건을 담아 주기 위하여 모으고 있다. 버려진 폐박스를 한 쪽 구석에서 모아놓곤 한다.
폐박스뿐 아니라 각종 옷 그리고 신발 등등 그야말로 잡동사니가 넘쳐나는 곳이 그녀의 공간이다. 우산을 모은 것만 수 십 개가 넘는다.
“언니, 이 우산은 오래 되어서 쓰지 도 못할 텐 데 그만 버리지 뭘 이렇게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보기 지저분하고...”
언니의 눈치를 보면서 살짝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혹시 언니가 기분 나빠 하면 빨리 말끝을 흐리려고 언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약사 이모... 그냥 갸들이 불쌍해서... 차마 버릴 수 가 없네요. 꼭 나 같아서...”
숙희 언니가 요즘 몸이 많이 아프다.
너무 더웠던 작년 여름 더위에 지치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저런 치료를 하면서 기력은 조금 올라왔으나 그 뒤로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하월곡동 88번지가 재개발되면 숙희 언니와 언니의 마차는 어디로 가야할까?
이 땅 하늘아래 갈 곳이 있을까…마음이 아파오는 봄날이다.
약사 이미선
1961년 생.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현재 하월곡동 88번지에서 26년 째 '건강한 약국' 약사로 일하고 있다. '하월곡동 88번지'는 소위 '미아리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집창촌이다. 이 약사는 이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약사 이모'로 불린다. 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여 주민 상담, 지역 후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ms644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