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인(iN)에서 간결하고 통찰력 있는 답변으로 유명했던 녹야(綠野) 조광현옹이 지난 2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그는 네티즌들끼리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지식인 서비스를 대표하는 유명인이었다. 녹색 들판을 뜻하는 ‘녹야’라는 아이디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 가까이 활동하며 수많은 답변을 남겼다. 많은 답변 활동과 높은 채택률로 ‘태양신’ 등급에 올라 태양신 할아버지로 불렸으나, 나중엔 수호신 등급까지 올랐다.
수호신 등급이 되려면 채택된 답변수가 2만개, 채택답변률은 50%가 넘어야 한다. 고인은 5만4000여개의 답변을 남겼고, 채택답변률은 85.7%에 달한다. 지식인 답변 활동을 인정받아 2008년 네이버 파워지식인상을 받았고, 2009년 명예의 전당 채택왕 73위에 올랐다.
고인이 인기를 얻은 건 특유의 답변 스타일이 네티즌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줬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산타할아버지의 나이를 묻는 질문엔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라는 답을 남겼다. 노인네들은 그저 먹는 것이 최고지요. 2015년 5월 할아버지 생신 선물을 고민하는 15살 여자 아이에겐 “노인네들은 그저 먹는 것이 최고지요”라며 “맛있는 초콜릿이나 준비하시죠”라고 답하는 식이다. 네티즌들에게 받은 ‘좋아요’ 숫자만 15만7000개가 넘는다.
고인은 건강 악화로 2017년 2월, 2018년 10월 두 차례 지식인을 떠난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팬들의 성화로 2019년 2월 복귀해 활동을 이어갔다.
고인은 2020년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오전 4~5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고 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모니터의 작은 글씨를 볼 땐 돋보기 두 개를 겹쳐 보기도 했다. 고인은 “나를 지정한 질문엔 다 답해주려고 한다. 일반 질문은 하루 20~30개씩 살펴보고 있다”며 절실함이 느껴지는 질문에만 답한다고 했다.
경기 김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58학번으로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까지 33년간 서울에서 개인 치과 의원을 운영하며 치과의사로 일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영역도 인체 건강상식, 치아 유지, 관리 분야였다.
네이버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조옹의 빈소에 최수연 대표 명의로 근조 화환을 보냈다. 네이버는 지식인에 “지식iN 서비스에서 답변을 달아주시며 많은 사랑을 받으셨던 영원한 지식iN 할아버지 녹야 님(조광현 님)의 별세를 애도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15분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