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수주의에 균열을 내는 시도일까, 아니면 관음적 호기심을 동력으로 한 문제작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을 둘러싼 공방이 격렬하다. 프로그램 진행자 신동엽이 SBS ‘TV 동물농장’, tvN ‘놀라운 토요일’ 등에서 하차 요구를 받자,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신동엽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논쟁은 성별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성+인물’은 신동엽과 성시경이 외국 성 산업 종사자를 직접 만나 궁금증을 해소하는 프로그램. 지난 25일 공개된 일본 편은 28일 ‘오늘 시리즈 순위’ 4위까지 올랐다. 순위와 달리 여론은 부정적이다. 특히 일본 AV(Adult Video·실제 성행위를 포함한 성인 비디오) 배우들이 출연한 2화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본 AV 산업에서 벌어지는 출연자 인권 침해 문제를 외면하고, “하기 싫으면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환경”, “남자 배우가 대본에 없는 행위를 하거나 멋대로 구는 경우는 없다” ,“성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촬영을 시작한다” 같은 발언을 내보내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나우(HRN)가 2016년 3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AV 제작사는 여성들에게 ‘유명 모델이나 배우로 만들어주겠다’며 접근한 뒤, 성인 비디오에 출연하도록 여성들을 속이거나 협박했다. 제작사들은 여성들에게 성형수술 비용과 숙소 비용 등을 청구하는 한편,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가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에 기술된 피해자 중 한 명은 극단 선택을 했다. 지난해 AV 출연피해방지 구제법이 일본 참의원을 통과했으나, 이는 성행위 촬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법안이라며 개정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인터뷰 중 “(AV가) 성욕을 충족시켜 성범죄율을 낮춘다”는 발언도 위험하다. 포르노와 성범죄율 사이 연관성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수십 년째 의견이 갈리는 논쟁거리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포르노가 성범죄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지만,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포르노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청소년은 ‘남성=지배, 여성=예속’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돌프 질만·제닝스 브라이언트)도 있다.
“미지의 세계였던 성과 성인문화 산업 속 인물을 탐구하는 신개념 토크 버라이어티쇼”라는 설명과 달리, 두 MC의 질문이 사적 호기심에서 기인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들은 AV 배우들에게 “지금까지 몇 명의 여배우와 해봤느냐” “외모는 취향에 맞는데 촬영하고 나니 좀 별로인 사람이 있었느냐” 등을 물었다. 성인용품 판매점과 성인 VR(가상현실)방을 찾아간 1화에선 직원에게 ‘새로운 제품이 입고되면 판매 전 직접 사용해보기도 하느냐’는 취지로 질문하거나, 방문객에게 “얼마나 자주 오느냐” “주변 사람에게 방문 사실을 알리느냐”고 묻는 등 타인의 성생활에 초점을 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언급이 금기시된 성 문화를 수면 위로 끄집어낸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성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기보다는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한 인상이 짙어 아쉽다”고 평했다. 이어 “성이라는 소재를 예능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읽히지만,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불편하게 느낀다. 정서적인 부분이나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는 의미”라며 “시청자들이 지적한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고 보완하면서 프로그램을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고 진단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