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냐 기회냐… 해외 OTT 공세에 국내 업계 ‘시름’

위기냐 기회냐… 해외 OTT 공세에 국내 업계 ‘시름’

기사승인 2023-05-12 06:00:22
최근 한 지상파 프로그램 제작발표회 현장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출연진 마이크에 붙은 피켓에 프로그램이 아닌 방송사명이 적힌 것이다. 회사 브랜드 홍보를 위한 전략이다. 관계자는 “OTT로 프로그램을 납품하며 상대적으로 희미해진 방송사 브랜드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픽사베이 

지상파 이어 흔들리는 국내 콘텐츠 업계

모바일 시대, 콘텐츠가 OTT 플랫폼으로 쏠리면서 지상파 방송사 입지는 흔들린 지 오래다. 최근에는 OTT가 지상파 전유물로 꼽히던 시사교양 분야까지 발을 넓히며 지상파 인력 유출은 가속화됐다. 얼마 전 퇴사한 장호기 MBC 시사교양국 PD가 대표적이다. 예능, 드라마 분야가 아닌 시사교양 PD의 퇴사는 이례적이다. MBC에서 ‘PD수첩’을 연출한 장호기 PD는 최근 넷플릭스 ‘피지컬: 100’을 연출해 이름을 알렸다. 이외에도 넷플릭스는 최근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제작해 국내 다큐멘터리로도 영역을 넓혔다. 시사교양 제작기지로서 지상파 역할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PD들이 지상파를 떠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작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방송 관계자는 “지상파 제작비는 외부 투자에 자유로운 OTT보다 구조적으로도 적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통 플랫폼에서 시작한 위기는 국내 콘텐츠 업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해외 OTT 플랫폼 기업 넷플릭스가 한국에 25억달러(한화 약 3조3000억원) 규모의 4개년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국내 제작사 사이에선 불안감이 커졌다. 넷플릭스가 업계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어서다.

국내 제작사가 만든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의 핵심 IP다.   사진=김예슬 기자 

넷플릭스 투자, 마냥 웃을 수 없는 국내 OTT·제작사

해외 OTT 공세가 강해질수록 국내 OTT는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작비 규모가 커지면서 일부 작품은 국내 OTT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면서 “업계 실정상 자본으로 넷플릭스를 이기긴 힘들다”고 말했다. 국내 OTT 대표 주자로 꼽히는 티빙과 웨이브는 해마다 적자폭이 늘고 있다. 지난해 각 사가 기록한 영업손실은 각각 1191억원과 1217억원이다. 처음으로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티빙의 손실액은 2020년 61억원, 2021년 762억원이었다. 웨이브는 2020년 169억원, 2021년 558억 적자였다. 관계자는 “국내 OTT가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해외 OTT 공세가 이어지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제작사에게 넷플릭스 자본은 양날의 검이다. 부족한 제작비를 자유롭게 지원하는 대신 작품의 지식재산권(IP)을 넷플릭스에게 넘기는 불공정 계약이 만연해서다. 제작사 싸이런픽쳐스가 넷플릭스에게 200억원가량을 지원받아 ‘오징어 게임’을 제작했으나, IP를 넘겨 부가 수익을 얻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넷플릭스 한국투자,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K콘텐츠가 하청화 되지 않으려면 IP 협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의원회의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처럼 넷플릭스가 불평등하게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고 있다”며 저작권 문제 해결을 역설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영상물 저작자가 IP를 양도한 후에도 콘텐츠 최종 제공자에게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동 콘래드 서울 파크볼룸서 열린 웨이브 콘텐츠 라인업 설명회에서 이태현 웨이브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웨이브

위기를 기회로? 관건은 ‘국내 창·제작자 보호’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 제작 시장은 활기를 띤다. 국내 OTT 업계 역시 이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이태현 웨이브 대표는 지난달 25일 열린 콘텐츠 라인업 설명회에서 넷플릭스의 대규모 투자를 두고 “환영할 이야기”라면서 “자본이 시장에 들어와야 경쟁이 이뤄진다.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로 내부 창작자에 힘이 실리길 바란다”고 했다.

관건은 창작자 보호다. 앞선 토론회에서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넷플릭스의 국내 투자는 매우 좋은 계기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 역시 “넷플릭스가 가진 투자 여력에 (국내 업계가)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선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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