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나온 한 장면. 기업 대표가 100억원을 기부하자 다빈치 2대와 맞먹는 금액이라는 말이 나온다. 극 중 병원 과장급 교수가 100억원 기부 기념식에서 “다빈치가 무려 2대야, 2대!”라며 호들갑을 떠는 장면도 연출된다.
여기서 언급된 ‘다빈치’는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만든 수술용 로봇이다. 흔히 외과수술, 특히 복강경 수술을 할 때 많이 사용되는 제품으로, 한 대당 30~50억원을 웃도는 고가의 장비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연세대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이 최초로 도입한 이후 현재는 국내 대학병원에서 사용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전 세계 시장 점유율 70%, 69개 국가가 다빈치 로봇을 도입했다.
스테디셀러 ‘외국 의료로봇’… “비싸도 안정성 보장”
현재 인튜이티브 서지컬 외에도 존슨앤존슨, 지멘스 헬시니어스, 스트라이커, 짐머, 올림푸스 등 다양한 외국 기업이 만든 의료 로봇들이 국내에 들어와 의료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이들 로봇 모두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최근 ‘꿈의 암 치료 기기’로 알려진 중입자 치료 기기 역시 수입 제품으로 가격이 1000억원에 달한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다빈치 로봇 수술의 경우 1회 수술 과정에서 소모되는 부품과 기계 관리 비용이 약 100~150만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입이 딱 벌어지는 가격 부담에도 대형병원을 비롯한 다수 종합병원들은 이 같은 외국 제품을 찾는다. 직접 로봇을 사용하는 의사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S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임상에 있는 수술 전문 의료진들은 외국 제품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국산 제품은 이제야 막 한두 개 성공을 거둔 반면, 외국 제품은 10년 넘게 사용돼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로봇을 사용할 때 안전성, 그리고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데, 국산 제품은 기술이 좋더라도 명확한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수술 치료에 생명이 달린 만큼 비싸더라도 사용이 익숙한, 신뢰가 높은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K종합병원 관계자는 “새로운 로봇의 도입 여부는 로봇을 사용할 의사들의 테스트를 거친 뒤 결정된다. 국내 기술은 적용 초기 단계라 가끔 오류가 나거나,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은 경우가 있어 아쉽다고 의사들이 말하곤 한다”고 전했다.
국산 의료로봇도 출발선 넘어 잰걸음… “수가 해결 관건”
출발은 늦었지만 국산 의료 로봇 기업들도 단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정형외과 및 재활 로봇을 개발한 큐렉소는 해당 분야에 있어 국내 선두 자리를 지키며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최초 복강경 로봇 개발 기업인 미래컴퍼니는 지난 3월 진입이 어렵다는 상급종합병원에 들어섰고, 전문병원 등으로 공급을 늘리는 추세다.
국산 제품의 장점은 경제성과 빠른 서비스다. 업계 A관계자는 “해외 제품에 비해 수술 시 들어가는 비용을 기존보다 20~40% 줄일 수 있다”며 “국내 특성상 빠른 대응을 원한다. 국내사들은 신속하게 불편을 접수하고 대응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의사들의 호응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중은 적다. 일각에서는 ‘진입 자체가 너무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B의료 로봇 기업 마케팅 관리자는 “의원급처럼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는 시작하는 단계에서 가성비가 좋은 국산 제품을 구입하기 좋지만 대형병원은 이미 여러 개의 외국 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새로 도입하기 쉽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상급종합병원에 공급돼야 활용 사례가 늘어나고 연구 데이터도 다양하게 쌓을 수 있다. 그래야 국산 제품에 대한 의료진의 부정적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며 “국산 의료 로봇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형병원과 연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산 의료 로봇 활성화의 관건은 결국 수가에 달렸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재활 로봇의 경우 수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보조기를 사용할 때와 같은 행위 가격을 받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로봇을 들이는 게 오히려 손해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재활 로봇에 한해 별도 수가 반영이 가능해졌다. 지난 3월2일 정부의 제3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첨단 규제 혁신방안’이 발표됐고 재활 로봇의 안전성 검증 등을 통해 보험 수가를 적용하도록 했다.
C기업 관계자는 “재활 로봇을 활용하는 행위에 대해 건강보험 지원이 확대되면 병원 측에서도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려는 의지를 보일 것”이라며 “최근 환자들도 치료 효과가 확실한 재활 로봇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존보다 좀 더 비싼 비용을 내더라도 재활 로봇 접근성이 넓어진다면 환자들에게도 득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