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게임2’ PD “인간은 생각보다 선하다” [쿠키인터뷰]

‘피의 게임2’ PD “인간은 생각보다 선하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6-02 06:00:06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2’를 연출한 현정완 PD. 웨이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거짓과 배신이 판을 치고, 음모와 모략이 수시로 벌어지는 곳. 게임 규칙이 도덕과 규범보다 우선하고,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선의가 힘을 잃는 곳.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2’는 그런 곳이다. 참가자 14명은 최대 상금 3억원을 얻기 위해 인간성을 내려놓는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 강한 사람보다는 약은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런데 이 생지옥을 설계한 인물에게서 예상 밖의 소회가 튀어나왔다. “‘피의 게임2’를 촬영하면서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느꼈어요.” 생존 예능에서 성선설을 건져 올린 이는 ‘피의 게임’ 시리즈를 연출한 현정완 PD.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동 한 사무실에서 만난 현 PD는 “생존 앞에서 인간이 생각보다 선하고 이타적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느꼈다. 개인의 능력만으로 게임을 푼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연합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현 PD가 뜻밖의 ‘인류애 충전’을 한 데는 야생에서 생활한 홍진호 연합의 공이 컸다. 벌레가 들끓는 야외에서 동고동락하며 전우애를 쌓은 네 사람(홍진호·덱스·신현지·서출구)은 서로를 살리고자 희생을 무릅쓰며 ‘약은 자가 살아남는다’는 생존 게임 법칙을 보란 듯이 깼다. ‘사우나 연합’으로 불린 하승진·넉스·윤비도 끈끈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이 연합 리더 역할을 했던 넉스는 자신의 승리보다 동료의 생존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몸을 던졌다. 그 덕분일까. ‘피의 게임2’는 웨이브 신규 가입자를 늘린 견인차 구실을 했다. 화제성도 TV·OTT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높다.

저택 습격 과정에서 하승진(왼쪽)과 덱스가 충돌해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웨이브

그렇다고 ‘피의 게임2’가 마냥 훈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참가자들 사이에 욕설이 오가기는 예삿일. 야생 연합이 저택을 차지하려 습격하는 과정에선 거구 하승진과 특수부대 출신 덱스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현 PD는 “현장에서도 많이 놀랐다”면서 “다만 충돌이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방송에 나온 것이 전부다. 두 사람 사이가 나빠질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서로 화해하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TV 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해당 장면을 삭제했겠으나 OTT는 유료가입이라는 진입 장벽이 있다. 격렬한 대립 장면이 있음을 미리 알리고, 이를 감수할 시청자가 (‘피의 게임2’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피의 게임2’는 여러모로 OTT 맞춤형 콘텐츠다. TV보다 폭력 수위가 높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존 예능이라는 장르부터 TV보단 OTT에 어울린다. 대중적이진 않아도 마니아층이 확실해 플랫폼 유료 가입자를 늘리기에 제격이라서다. 방송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었지만, 시즌1 성공을 맛본 웨이브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현 PD는 “TV 콘텐츠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들어야 하지만 OTT는 뾰족함이 필요하다”며 “되감기, 빨리 감기, 재생 속도 조절 등이 가능한 OTT 특성을 고려해 회당 상영시간을 최대 2시간으로 늘리고 게임 난도도 높였다”고 귀띔했다.

‘피의 게임2’에 참가한 모델 유리사. 아이큐 156이 넘는 그는 현 PD가 뽑은 ‘조기 탈락이 아쉬운 출연자’ 중 하나다. 웨이브

tvN ‘더 지니어스’ 등 생존 예능 팬이라는 현 PD는 ‘피의 게임2’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 좋아하는 장르 예능을 직접 만들었을 뿐 아니라, 유럽으로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까지 했다. 그는 “외국 생존 예능에선 게임보단 연합이 더 중요하다. 투표 결과에 따라 탈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 시청자들은 게임에 민감하고, 생존자에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자격을 기대한다”고 비교했다. 어쩌면 유럽판 ‘피의 게임’이 이런 해외 생존 예능 흐름을 바꿀지 모를 일이다. 이미 한국에선 ‘피의 게임’ 시즌3 제작 요청도 빗발친다. 다만 현 PD는 아직 다음 시즌을 자세히 계획하진 않았다고 한다.

“‘피의 게임’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많은 시청자가 슈퍼 히어로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혼자서 모두를 이겨내는 천재적인 히어로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게 쉬울까요. 다들 상처받고, 때론 패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우승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중요했습니다. 저택과 야생, 서로 다른 두 환경에 있던 집단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발생하리라고 믿었어요. 제가 이런 진단을 내릴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결국 캐릭터와 상황을 충돌시켜 이야기가 나오도록 만드는 게 생존 예능 성패를 가르는 것 같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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