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보험사가 14년간 싸운 ‘진짜’ 이유

의료계와 보험사가 14년간 싸운 ‘진짜’ 이유

‘제2의 건강보험’ 실손의료보험
보험업계 ‘14년 숙원’…국회 정무위 통과
비급여 진료비 두고 의료계·보험업계 갈등
소비자 편익 증진으로 이어질지는 ‘물음표’

기사승인 2023-06-20 06:05:01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두고 싸우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는데 말을 못할 뿐이죠”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지난 15일 통과했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보험금 청구 양식 통일 및 방법 간소화를 권고한 후 14년 만이다. 이제 남은 절차는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다.

그동안 실손보험 청구를 하려면 보험 가입자가 직접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면 보험 소비자는 의료기관 이용 후 별도의 서류 제출 없이 병원에 요청하는 것만으로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실손보험은 지난 2020년 기준 전 국민 80%(4138명)가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도 불린다. 청구 금액이 소액이라서, 혹은 서류 발급을 위한 병원 방문이 귀찮아 가입자가 청구하지 않는 보험금만 연간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정보 유출 vs 소비자 편익…대립해 온 의사와 보험사

의료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민감한 의료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보험사의 환자정보 집적에 따른 의료민영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의료계는 급기야 위헌소송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험업법 개정안의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통과 시 의료데이터 전송 거부 운동 등 보이콧과 위헌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업계 숙원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소비자 편익 증대’를 명분으로 들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일견 보험사에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동안 귀찮아서, 혹은 소액이라서 소비자들이 청구하지 않았던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보험금이 이제는 간편한 절차 덕분에 보험사에 청구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다.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전산시스템 구축, 운영비도 보험사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왜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시행을 촉구해 온 걸까.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피해자들이 지난해 6월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사진=김은빈 기자

손해율 관리 원하는 보험업계…비급여 진료비 인하 압박 우려하는 의료계

의료계와 보험업계가 이해 관계가 갈리는 진짜 이유는 비급여 진료비와 연관이 깊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의료기관별로 천차만별로 책정돼 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회당 수십만원인 도수치료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한 해에만 도수 치료로 1조1000여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급여 진료비는 실손보험 손해율이 해마다 100%를 넘기는 주된 요인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모든 서류를 병·의원으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게 되면 보험사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해 부풀려진 실손보험금 청구를 적발할 수 있다”며 “이게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원하는 진짜 이유”라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비 정보가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처럼 투명하게 공개되면 보험사는 손해율 관리가 가능해 진다는 뜻이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좋을 리 없다. 자칫 의사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권익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소비자 권익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의견은 갈렸다. 정경인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 대표는 “백내장 수술비 등 소비자가 정당하게 청구했는데도 제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 편익이라는 공익을 위해 청구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보험사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험 가입자 권익 보호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다른 문제가 산적한데 청구 간소화가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소액 청구금도 이제 쉽게 처리가 가능하니까 소비자 권익을 높일 수 있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면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비급여를 터무니 없이 높게 청구하는 병원을 찾아내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을 수 있게 된다는 게 큰 장점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편익이 증대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보험업법 개정안 논란’ 긴급 토론회에서 “소액 진료비를 청구하는 보험 가입자의 일시적 편익은 증진될 수 있어도 보험사가 집적된 환자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고액·비급여 진료비 부담 환자들에 대해 보험금 지급 거절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보험료 인상으로 인해 가입자 편익과 권익을 해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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