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대학로. 공연을 마친 배우 전석호의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통화 2건이 와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건 상대는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와 배우 마동석. 차례로 전화를 회신한 그는 장 대표로부터 ‘이번에 형이랑 같이 하자’는, 목적어도 없는 제안을 받았다. ‘네!’ 쾌활히 답한 그는 이어 마동석에게 ‘범죄도시’를 함께하자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네’를 외쳤다. 지난 16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전석호는 캐스팅 당시를 회상하며 “다른 것도 묻지 않고 날 믿어준 게 고마웠다”며 뿌듯해했다.
전석호는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그가 김양호 역을 연기한 영화 ‘범죄도시3’(감독 이상용)가 누적 관객 1000만명에 근접해서다. 관객수가 100만씩 늘 때마다 꿈을 꾸는 것 같단다. 초롱이 역을 맡은 동료 배우 고규필과 매주 무대인사를 함께하며 “이게 현실이 맞냐”며 얼떨떨해하는 게 그의 새로운 일상이 됐다. “매일 (고)규필 형과 이런 이야기를 나눠요. ‘우리에게 언제 또 이런 날이 오겠어, 즐기자’라고요. 하하!” 그는 환하게 웃다가도 금세 뭉클한 얼굴로 “이런 인터뷰를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범죄도시’의 몇 안 되는 성실한 친구이자 유일하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 전석호는 김양호를 이렇게 소개했다. 영화의 제작과 주연을 함께 담당한 마동석은 촬영을 다 마친 뒤에야 그에게 김양호가 장이수(박지환)를 대신하는 역할임을 귀띔했다. 현장에서는 이상용 감독, 마동석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생각한 대로 연기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어리숙한 김양호다. 그는 “웃기겠다는 생각 없이 진지하게 임했다.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바랐다”며 “웃기다는 반응이 신기하면서도 기쁘다”고 했다.
밉살 맞은 캐릭터에도 귀엽다는 반응을 끌어내는 건 전석호의 특기다. 대중에게 그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한 tvN ‘미생’ 하대리부터 넷플릭스 ‘킹덤’ 조범팔과 ‘범죄도시3’ 김양호에 이르기까지, 그가 맡은 역할은 때때로 비열하거나 기회주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신경 쓰이더니, 조금씩 천천히 마음에 스며든다. 전석호는 명랑한 어투로 “성격이 연기에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킹덤’ 공개 때 (김)은희 누나가 그러더라고요. ‘원래 범팔이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라고요. 저답게 연기해서 그런 것 같아요. 평소에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거든요. 톰슨가젤(영양)처럼 도망 다니는 느낌과도 잘 맞고요.”
전석호는 자신의 배우 인생을 ‘정답 없음’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답을 정해두지 않고 대본에 깊이 파고들어서다. 공연계에 몸 담으며 익힌 연기 방식이다. 그는 “대본이 좋으면 인물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김양호 역시 이런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어떤 이미지로 연기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극 흐름 전반에서 김양호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죠.” 그는 늘 캐릭터가 극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해내야 할 역할을 고민한다. 인물보다 극 전체에 집중하는 이유다.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의외의 반응을 많이 보내주시더라고요. ‘킹덤’ 때도 ‘인생은 조범팔처럼’이라는 말이 나오길래 어안이 벙벙했어요. ‘미생’ 때는 욕을 먹던 것도 몰랐고… ‘범죄도시3’는 제가 나오는 장면들이 웃기다는 말에 놀랐죠. 늘 얼떨떨하게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하하.”
전석호는 “모든 필모그래피에 만족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작품만 하기 때문”이다. 제 몫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 연기로 관객을 설득하겠다는 사명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다양한 마음을 안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여러 배움을 얻는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할수록 스스로에게 갖는 믿음은 더욱더 커진다. 전석호는 “연기할 땐 고민이 많지만 평소엔 아무 생각이 없다. 해낼 수 있다, 없다만 생각한다”면서 “스스로를 의심할 바에는 할 수 있다고 믿고 어떻게든 해내려 한다. 그게 내 강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 딱 이 생각뿐이에요. 그렇게 해야 비로소 전석호로 존재하는 기분이거든요. 저는 명확한 취향이나 편견, 선입견이 없어요. 스스로에 관해 자주 복기하지만 정답을 내리진 않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딱히 궁금하지도 않더라고요. 그냥 사람이겠거니 하는 거죠. 그렇게 살아도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던데요? ‘미생’이나 OCN ‘라이프 온 마스’, ‘킹덤’이 제게 전환점을 만들어준 것처럼요. ‘범죄도시3’도 그래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저를 더 믿게 됐어요. 이 마음을 되새기며 또 나아가야죠. 다음 작품 역시 잘 해내야 하니까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