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외교 문제 등으로 초래된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원료의약품 자급률 강화가 제시됐다. 업계는 자급률을 확보하려면 국산 제품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미국, 벨기에,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자국 내 의약품 공급 강화 추진안을 발표하는 등 원료의약품 자립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은 현지에서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세금 면제 정책을, 유럽연합은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의약품 법안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말부터 국가필수의약품 중 원료의약품 72개 품목의 수입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밝히고, 관련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완제의약품에 약가우대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약가우대제도란 제약사가 원료를 직접 생산해 의약품을 만들 경우 해당 약가를 높여주는 것으로, 1년으로 적용 시기를 한정했다.
하지만 약가우대 적용 기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소제약사 비율이 높은 국내 특성상 회사가 직접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이윤이 나지 않아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원료를 개발하고 자체 생산하는 비용이 부담돼 중국, 인도로부터 값 싼 원료의약품을 들여오는 것인데 약가를 좀 더 받자고 이를 감내할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원료의약품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는 국내 업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우대정책 기준을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자회사나 계열사가 생산하는 원료의약품을 활용하는 방안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모회사인 제약사가 자회사, 계열사에 원료의약품을 의뢰하고 구매하는 것은 ‘내부 거래’로 판단돼 정부의 제재가 따른다. 또 이 같은 루트는 자체 생산 대상으로도 삼지 않아 약가우대 적용을 받지 못한다.
제약업계 관계자 B씨는 “십여 년 전만 해도 원료의약품을 만드는 자회사에서 원료를 사들여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비중이 20%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 측에서 이를 내부 거래로 보고 제재하면서 지금은 0.5%만을 자회사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는 되도록 국내 다른 업체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약가우대 적용이 안 되더라도 품질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자회사나 계열사의 원료의약품을 활용하도록 지원해준다면 자급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원료의약품 제조업체는 대개 원료를 수출하는 틀에 맞춰져 있는 만큼 자급화하고자 하는 필수의약품 원료는 개발부터 허가사항까지 고려할 점들이 많아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자급률을 확대하려면 값 싼 해외 원료의약품에 의존하는 국내 여건, 원료의약품 업체들의 수출 지향 체계, 중소 제약사의 개발 인프라 부족 등 다양한 원인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은 원료의약품 공급망 안정을 위해 전방위적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우리도 100% 수입에 의존하거나 필수의약품인 경우 자급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산 제품을 적극 생산하고 쓸 수 있는 지원 방안이 구축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사 생산 원료에 대한 우대 기간은 1년으로 실효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를 연장하는 안을 검토해야 한다. 약가우대 조건도 자사 생산에 한정하지 말고 계열사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련해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간담회 등을 통해 업계와 원료의약품 자급률 확대 방안을 논의해 왔다”며 “약가우대제도 적용 기간을 5년으로 늘리고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나온 상태다.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다”라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