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엔 대지진을 겪고도 무너지지 않는 아파트가 등장한다. 시멘트와 물, 모래, 자갈 등 골재를 잘 배합하면 단단하고 내구성 좋은 콘크리트를 제조할 수 있다. 허구이긴 하나 지진을 견딜 만큼 안전한 아파트도 좋은 품질의 콘크리트에서 탄생한다. 실상은 다르다. 불량 골재를 쓰고, 타설 시간을 준수하지 않는다. 하자가 생겨도 눈가림하기 바쁘다. 유토피아인 줄 알았던 ‘내’ 집은 사실 디스토피아일지 모른다. 증언을 토대로 현장 부조리를 파헤쳐본다. ‘공구리’는 ‘콘크리트’(concrete)에서 나온 일본식 발음이다. -편집자 주
배합·타설·품질관리 ‘종합부실’
콘크리트 주 원료는 시멘트다. 시멘트와 물을 섞은 반죽을 ‘페이스트’라고 한다. 페이스트에 모래나 자갈 등을 혼합한 반죽이 콘크리트다. 콘크리트의 다른 표현은 ‘레미콘’이다. 레미콘은 ‘Ready mixed concrete’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공장에서 필요한 재료를 정량에 맞게 계량한 다음 대기 중인 차량에 실려 현장까지 운반되는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를 의미한다.
불량 콘크리트, 불량 레미콘은 생산 단계에서 비롯된다. 내구성이 강한 콘크리트 비결은 페이스트다. 페이스트 품질이 곧 콘크리트 품질을 정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장은 이익을 더 남기려고 일부러 배합을 변경한다.
레미콘 운송 노동자 A씨는 “배합불량은 생산과정에서 실수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고의로 배합을 변경 한다”라며 “생산 원가를 줄이려고 시멘트 양을 줄이거나 석탄재를 기준량 초과해서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면 재가 발생한다. 이중 비산재인 ‘플라이애쉬’는 시멘트 원료나 레미콘 혼화재로 쓰인다. 제품 품질이나 법적 규격을 초과하는 범위에서 사용하면 품질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불량 골재를 쓰는 경우도 있다.
A씨는 “골재 품귀 현상이 쓰면 대충 세척해서 염분이 남은 바다모래를 쓴다. 자갈 대신 돌을 깨거나 폐잡석을 섞는다”며 “제조사 배합불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품질 실험실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건설사 품질관리 실험실이 배합불량 점검을 해야 하는데 형식인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시멘트 배합비율도 아파트 공사 현장과 일반 소규모 사업장을 다르게 해 강도 차가 벌어지는 실정이다. 레미콘 차량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강도를 정상치로 높인 차량만 실험 하는 등 ‘보여주기’ 식이 태반이다.
현장은 레미콘 타설 시간도 지키지 않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레미콘은 동절기 120분, 하절기엔 90분 이내로 타설돼야 한다. 이 시간을 넘기면 품질 불량 원인이 돼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현장에선 이를 어기고 있다. 잘못을 개선하려고 해도 오히려 물량배정 불이익을 당할까봐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A씨는 “현장에선 2~3시간을 대기하고 타설 한다”며 “이러면 레미콘이 축구공처럼 동그랗게 굳어서 나온다. 이러면 다 폐기해야 하는데 현장에선 물을 타거나 억지로 타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폐기를 요구하면 폐차를 시키기도 하지만, 요구를 묵살당하기도 하고 운송기사가 소속된 공장에 전화해서 물량 배정을 끊겠다고 협박하다 보니 직접 근절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갑질로 인해 현장엔 단시간 내 레미콘 차량이 무더기로 배치된다. 공사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함이다. 만일 장시간 타설 지연으로 레미콘이 굳으면 물을 탄다. 현장 가수(加水)는 여름철에 빈번하다. 우천 시에도 가림시설 없이 레미콘 물량을 타설한다.
A씨는 “현장 가수는 건설사 묵인 하에 항상 발생하고 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시멘트와 골재가 둥둥 떠다니는데도 타설 한다”라며 “이의를 제기하면 공사를 중단하거나 지자체에 고발하면 작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거의 무시 된다”고 토로했다.
이밖에 불량 레미콘이 타설된 현장에서 골재가 분리되는 등 문제가 발생해도 사실을 은폐하거나 미장으로 덧칠하는 ‘눈가림’도 흔하다. 금전으로 보상하겠다며 회유하는 현장도 있다.
A씨는 “현장 노동자로서 부실을 목격하면 언젠가 문제가 될 걸 알고 우려스럽다”라며 “현장 노동자나 관계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데, 내가 거주할 집이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고 있다”고 따졌다. 그러면서 “입법기관인 국회가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