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고 찢겨도 재생되는 신체를 타고난 장주원(류승룡)은 젊은 시절 이렇게 말했었다. “무협지는 결국 다 멜로예요.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나요.” 그의 논리대로라면 디즈니+ ‘무빙’도 결국 멜로이자 무협지다.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난다. “착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기는 이야기”(강풀 작가), ‘무빙’이 20부작 대장정을 마쳤다.
‘무빙’은 초능력을 가진 부모와 그 능력을 물려받은 자식들이 악의 세력에 맞서는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용두용미’다. 머리도 꼬리도 용의 그것만큼이나 기세등등했다. 앞서 공개된 초·중반부가 각각 초능력을 자각한 자식 세대와 정체를 숨긴 채 살아야 했던 부모 세대의 과거사로 채워졌다면, 결말부에선 부모와 자식이 힘을 합쳐 북한 공작원들과 혈투를 벌인다. 오해는 마시길. 초능력자들이 마주한 ‘악의 세력’은 북한 공작원 개개인이 아니다. 애국 운운하며 남과 북의 초능력자를 착취한 국가 권력이 ‘무빙’ 세계관 속 악이다.
그 속에서 ‘소시민 능력자’들은 주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오감이 발달한 이미현(한효주)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식을 살리려고 목숨을 내놓기는 장주원과 이재만(김성균)도 마찬가지. 작품을 연출한 박인제 감독은 “최근 부모가 된 영향인지 가족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며 “각 캐릭터의 서사와 감정을 토대로 액션 장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공작원들에게도 지켜야 할 사람은 있다. 비행 능력을 가진 정준화(양동근)는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상관에게 총구를 겨눈다. 재생 능력자 권용득(박광재)과 괴력의 사내 림재석(김중휘)은 유일한 벗인 서로를 외면하지 못한다.
원작에서 큰 울림을 줬던 김봉석(이정하)와 정준화의 대치 장면은 드라마에서 생략됐다. 강풀 작가가 집필한 동명 웹툰에서 봉석은 공중에서 준화를 뒤쫓다가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준화의 말에 추격을 멈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라던 어머니 미현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북한군에 잡혀있던 김두식(조인성)의 귀환도 다르게 그려졌다. 원작에선 조인성이 수갑 채워진 한쪽 다리를 절단해 탈출하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됐지만, 드라마에선 준화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서 벗어난다.
후속 시즌을 암시하는 설정도 곳곳에 숨어있다. 강풀 작가가 쓴 또 다른 웹툰 ‘타이밍’의 주인공 김영탁(양승욱)이 ‘무빙’ 16화에 짧게 등장한 데 이어, 신혜원(심달기)이 국정원 권력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신혜원은 ‘무빙’에서 단역으로만 등장하지만, 원작 웹툰 후속작인 ‘브릿지’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인 프랭크(류승범)가 마지막 화 쿠키영상에 다시 나타난다. 그와 함께 훈련받았던 CIA 요원 일라이어스도 언급된다. 강 작가는 앞선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마친 뒤 몇 달 쉬다가 후속편 대본 집필 여부 등을 고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