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례적으로 지속되는 감염병 확산 추세에 따라 자녀에게 독감 백신 접종을 맞히려는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백신을 처음 맞는 아이들의 경우 면역력이 약화돼 있어 더욱 서두르는 모양새다.
최근 질병관리청은 동절기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을 내년 4월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접종을 처음 받거나 올해 6월까지 접종이 한 차례에 그친 생후 6개월 이상 9세 미만 어린이는 지난 20일부터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안내되고 있다. 이들 어린이는 4주 간격을 두고 접종이 2회에 걸쳐 이뤄진다. 다음달 5일부턴 1회 접종 대상인 생후 6개월~13세 어린이와 임신부, 10월11일부터는 75세 이상 노인을 시작으로 연령대별 순차적 접종이 시행된다.
이번 독감 접종에서 어린이 등 고위험군은 적극적 권고 대상이다. 매년 9월 유행주의보가 발령돼 이듬해 8월쯤 해제되던 것과는 달리 올해 독감은 연중 지속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와 소아를 중심으로 아데노바이러스, 수족구,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이 꾸준히 확산하고 있는 와중에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통한 집단 감염도 발생하는 상황이다.
부모들은 유행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자녀 접종에 나서고 있다. 소아과에 접종자가 몰릴 것을 예상해 대개 진료 예약 플랫폼을 통해 대기번호를 받은 뒤 접종을 받으러 가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21일 서울의 한 소아 전문 의료기관에도 백신 접종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세 자녀를 둔 김가영(가명·32세) 씨는 첫 독감 백신을 맞히러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수족구, 아데노바이러스 등 감염병이 퍼지고 있다는 말이 돌아 걱정이 크다”면서 “두 차례 접종을 해야 하는 만큼 서둘러 시간을 냈다”고 했다.
민지현(가명·35세) 씨는 “아이가 주사를 맞으면 종일 힘들어 해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왔다. 추석 연휴 기간에 여러 사람을 만날 예정이라 미리 접종하려 한다”며 “아이의 첫 접종이라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독감을 예방할 수 있다면 맞혀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 잇따라 논란이 된 어린이 해열제, 코감기약 수급 부족 문제도 부모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10월 초 아이의 백신 접종을 고려하고 있다는 우수영(가명·30세) 씨는 “최근 아데노바이러스에 걸려 아이가 크게 아팠다”면서 “해열제 수급이 그나마 나아져 다행이었다. 품절 상태가 풀리지 않았다면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감염을 경계하는 부모들의 백신에 대한 관심은 여느 해보다 높지만 전문가들은 의미 있는 접종률을 가지려면 한참 멀었다고 평가했다. 환절기를 앞두고 독감 등이 더욱 퍼질 것으로 예고되는 상황에서 영유아를 비롯한 전 연령의 접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학술 부회장은 “한꺼번에 여러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역사상 유래 없는 멀티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라며 “멀티데믹을 대비하는 기본 방어책인 백신을 통해 집단 면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접종 이후 항체 형성까지 2주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해 독감 시즌 전인 가을에 반드시 접종해야 한다”면서 “아이가 백신을 맞더라도 부모나 가족이 퍼트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효과를 보려면 모든 연령대의 접종을 촉진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라고 짚었다.
최 부회장은 또 “모든 백신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의학적으로 입증돼 있다”라며 “백신 부작용의 위해성보다 독감으로 인한 중증화를 고려해야 한다. 생후 6개월에서 59개월 소아는 독감 발병 시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아 예방 접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도 지난 20일 어느 해보다 독감 예방접종이 중요한 해라고 밝혔다. 지 청장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어린이, 노인, 임신부는 감염성 호흡기질환을 막기 위한 예방접종을 적극 권장한다”고 당부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